오정선展 - 설정을 흔들다

기사입력 2012.03.21 12:14 조회수 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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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선, 오도씨의 방(Room of wonder), Manufactured table and chair, size vary, 2012


오정선의 ‘설정을 흔들다’전은, 프로그램을 통하여 설정된 기준이 의식은 물론 무의식과 몸까지 삼투해 들어가는 촘촘한 체계의 그물망을 흔들고자 한다. 체계를 이루는 기준은 결코 중성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장에서 작동되고 권력을 통해 구조화된다. 개인이 체계의 원칙에 불만을 품고 바꾸려할 때, 또는 새로운 게임의 원칙을 도입하려할 때 기존에 설정된 것은 더욱 거세게 저항한다.

오정선은 지금 여기에는 없었던, 그래서 그녀가 원하는 것을 배우러 국내외에서 여러 전공을 전전하면서, 자기만의 설정이란 것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매뉴얼을 보지 않고도 복잡한 장난감을 가지고 잘 노는 3살짜리 딸아이는 훌륭한 귀감이 되었다. 이번 개인전 작품에서 새로운 설정의 기준으로 부각되는 것이 몸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오정선의 작품에서 몸이야 말로 확연한 차이를 추동하는 원천이다. 물론 차이 또한 권력의 장 속에서 작동한다.

▲ 오정선, The Moment, Manufactured music CD, music box, 22x22x10cm, 2012

차이가 차별이나 억압, 그리고 폭력으로 쉽게 전이 되곤 하는 결코 투명하지 못한 사회에서, 작가는 소통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사회 속 인간들이 좀 더 이성적으로 되면 소통은 투명해질까? 그러나 이성 자체가 편파적인 것이라면?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이성보다는 몸의 편에 선다. 형식적으로만 평등한 추상적 이성이 아니라, 각기 다를 수밖에 없는 각자의 몸이 무엇인가를 설정하는 기준이 되는 사회는 진정 민주적이리라. 이성의 투명성은 오감 중에서 가장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시각성에 바탕 해 왔고, 몸은 임상의학의 시선이 닿기 이전까지는 시각으로는 정복되지 않는 미지의 어두운 대륙을 차지하고 있었다.

의학을 비롯한 권력의 기술에서 몸의 코드를 해독하여 프로그램화하려는 줄기찬 시도들이 있어왔지만, 몸은 여전히 인간이 초월할 수 없는 강력한 현실로 남아있다. 한국에서 조소과를 나왔지만, 오정선에게 몸은 조각 예술의 기본이 되는 인체 상 만들기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 오정선, Was here...(Breath), Human breath, plastic bag, size vary, 2012

인체의 모사상은 이미 거울이라는 상상적 구축물에 의해 통합되어 있다. 작가에게 유리나 비디오 같은 매체는 통합된 거울상 너머, 또는 그 이전의 원초적 단계에 대한 탐구를 가능하게 하는 매체로 다가왔다. 재현의 질서를 대변하고 있는 거울은 반사나 재 반사, 반짝거리는 다양한 소재들을 이용한 설치물을 통해 해체, 또는 재구축된다. 작업에 종종 등장하는 수증기나 안개, 연기 같은 소재도 거울이 요구하는 설정을 교란시키는 요소이다. 서로 다른 수많은 도수의 안경알들을 투명 낚시 줄로 엮어서 공간에 설치한 작품 [another way of seeing]은 설정을 흔들려는 작가의 의지가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이 작품은 각각이 가지는 시각의 차이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그것은 동일자(the same)로 전유되는 한 가지 시각(vision)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성(visuality)을 보여준다.
 
마틴 제이는 [모더니티의 시각체제들]에서 르네상스 및 과학혁명과 더불어 시작된 모더니티는 철저히 시각 중심적이라고 여겨져 왔다고 평가한다. (중략) 때때로 화려한 스펙터클로 확장되는 작품에서 진실은 ‘기표와 기표 사이의 공간, 그 사슬의 구멍’(라깡)에 존재함을 강조한다. 의미와 거리가 있는 기표는 오르골 작업에서 두드러진다. 그것은 출산 직후 아이를 안고 처음 찍은 사진 이미지에 구멍 뚫어서 턴테이블처럼 돌아가며 음이 되는 작품이다. 옛 악기 소리의 아련한 분위기가 있지만, 구멍 뚫린 이미지에서 생성된 음 자체는 무의미하다. 선율로 나타나야할 선적 인과 고리는 공간화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이가 사회의 상징적인 질서인 언어를 처음 배울 때 들려오는 어머니(타자)의 말처럼 모호하다. 인간은 처음부터 기표의 비(`)의미와 만나는 것이다. 라깡의 이론에 의하면, 모든 주체가 그의 생애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 기표이다. 인간은 타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세계를 파악하기 시작한다. 언어에 있어서 명명하는 기능은 이후의 일이다. 언어는 무엇보다 타자의 현존을 먼저 불러온다. 기표의 우위는 비의미가 의미보다 더 먼저라는 것을 알려준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일생에 걸쳐 배우는 과정을 통해 비의미였던 것을 의미로 만든다. 기표를 중시하는 라깡의 이론은 사물과 언어 사이의 균열을 강조하며, 잃어버린 전체와 합일하려는 욕망의 주체를 영원히 따돌린다는 다소간 비관적인 메시지로 다가온다. 그것은 이 빈 공간을 그 어떤 대상도 충족시킬 수 없다는 실재의 허무를 예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전히 바닥을 치는 허무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허무는 지배적 언어를 이루는 견고한 구조 또한 상대적이라는 것을 밝히기 때문이다. 기표들 간의 다양한 결합을 통해 차이들의 구조를 보여주는 오정선의 작품에서, 존재와 사고, 또는 의미 사이의 괴리는 반영이나 언어 같은 간접적인 매개 이전의 원초적인 단계의 것, 즉 신체를 호출하게 한다.

작품 [my ruler]에서 작가의 한 뼘(19.1cm)이나 키(158.8cm)로 제작된 줄자는 지배적인 상징 언어의 기준을 자신의 몸으로 전환시킨다. 영상작품 [play with a space]는 작가가 거쳐 갔던 고양 스튜디오와 난지 스튜디오의 빈 공간을 자신을 몸을 이용하여 계측 한다.

▲ 오정선, Play with a Space, video, 2011

작품 [오도 씨의 방] 인간에게 모든 경계의 기준이 되는 신체를 부각시킨다. 휴게실처럼 꾸며 놓은 공간에 5도 정도 기울여 놓은 의자와 탁자는 그 위에 앉은 관객에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준다. 작품 [breath]는 공간 안에다가 비닐봉지에 한 번의 숨을 수집하여, 이 봉지로 공간을 채운다. 파티션 안에 축적된 수 천 개의 호흡은 공간을 시간--보통 1분 동안 15회의 숨을 쉰다--으로 채운다. 관객이 숨을 불어 넣는 만큼 공간의 불이 밝혀지는 작품 [breathing room]은 공간 전체를 숨 쉬는 방으로 연출한다. 모든 것이 상대화되는 세계에서 다시 호출된 몸은 신성한 기하학이 지배했던 시대의 ‘Vitruvian Man’같은 신인동성동형론적인 기준이 아니다.

오정선의 작품에서 몸은 결코 자기 충족적인 존재로 간주되지 않는다. 고전적인 누드에 내재된 이상적인 비례 체계는 원근법이나 카메라 옵스큐라의 시각을 상대화시켰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탈 보편화된다. 그녀가 호출한 신체는 보편적인 기준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가령, 2004년 작품 [play your music with me]는 몸의 본체가 아닌, 부산물, 즉 본인의 몸에서 탈각된 긴 머리칼로 만든 현악기인데, 그것은 관객의 터치로 울림을 낳는다. 자신의 신체 일부와 타자의 신체의 일부가 만나서 이루어지는 소리(연주)는, 세계가 어떠한 지배적 감각을 기준으로 식민화되는 객관적인 재현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더불어서 지각하는 공(d)감각적인 것임을 알려준다. 여기에서 몸은 존재로 고정되지 않으며, 원소처럼 끊임없는 진동상태에 있으면서 재배열되고 재가동 될 뿐이다. 메를로 퐁티가 말하듯이, 몸은 ‘자연과 우리를 이어주는 살아있는 끈’이며, 주체성은 ‘움직이지 않는 자기 동일성이 아니라, 주체성이기 위해 타자에게로 열리는 것’이 본질적이다.

신체를 나타내는 메를로 퐁티의 용어인 ‘살’, 그것의 두께는 보는 자와 사물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보는 자와 사물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된다. 시각 및 시각성에 천착해왔던 오정선의 최근 작품은, 타자와의 차이를 인식하며 타자들과 공존할 수 있는 연결망을 구축하는 제 1의 매개로 몸을 부상시킨다.

이번 전시회는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포스코미술관(www.poscoartmuseum.org)에서 3월 21일부터 4월 11일까지 열린다.

문의 : 서울시 강남구 대치 4동 892번지 포스코센터 서관 2층  / 02-3457-1665

■ 작가약력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조소과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조소과 졸업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유리과 대학원 졸업

개인전
2010  4회 개인전 ENCOUNTER, 관훈갤러리
2010  3회 개인전 HUMAN INTERACTION, 일주아트스페이스
2008  2회 개인전 EXTENSION OF VISION, 토포하우스-SeMA 신진작가 지원
2002  1회 개인전 SEEING METAMORPHOSIS, 갤러리 창

단체전
2011   여성작가전, 제주도립미술관, 제주
2011   AFTER EFFECT, 신미술관, 청주 국제 공예 비엔날레 특별전
2011   장춘 세계 조각포럼, 장춘, 중국
2011   BRING INTO THE WORLD, 난지 갤러리, 서울
2011   라이트 아트의 신비로운 세계, 경남도립미술관, 창원
2010   SPACIUM TEMPUS, Alchemy Gallery, 북경, 중국
2010   특별한 이야기, 영천 시안 미술관, 영천
2010   EMERGING ASIAN ARTISTS, 광주 김대중 컨벤션센터,광주비엔날레 특별전With.., 한전 갤러리, 서울
2010   HOT & COLD, 갤러리 목금토, 서울
2010   산책하는 이들의 즐거움, 부산시립미술관, 부산
2010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 오픈스튜디오, 국립고양창작스튜디오, 고양
2010   레지던스 퍼레이드, 인천 아트플랫폼, 인천
2010   INTRO.., 국립고양창작스튜디오, 고양
2009   조각적인 것에 대한 저항,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9   WOMAN POWER, 한전갤러리, 서울 
2008   반응하는 눈-디지털 스펙트럼,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등 다수의 그룹전

수상
포스코미술관 공모선정작가 선정
일주선화재단 기획전시 선정
Glass Art Society Annual Conference Emerging Artist Lecture, 뉴욕, 미국
SeMA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 선정작가
City of Pittsfield 퍼블릭 아트 프로젝트 기획 공모 당선, 메사츄세츠, 미국
Friend of Glass Scholarship 수상, 로드아일랜드, 미국
Pilchuck Scholarship 수상, 씨애틀, 미국

레지던시
2006 Pilchuck Glass School Emerging Artist in Residence, 씨애틀, 미국
2010 국립 고양 미술 창작 스튜디오, 고양
2011 난지 미술 창작 스튜디오, 서울

 

[오창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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