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피카소 김환기展, 5만명 이상 최다 관람객 수 기록

기사입력 2012.02.28 13:06 조회수 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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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갤러리현대는 1월6일부터 2월26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전시된 '한국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展'에 5만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다녀갔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는 개관이래 최다 관람객 수를 기록했다.

박수근, 장욱진에 이어 갤러리현대가 세 번째로 기획한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평일인데도 삼청동 일대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김환기 작가 열풍이다. 김작가의 전시장안에서 갤러리현대소속 추지영 작품해설가로부터 설명을 들으면서 이동하는 관람객들은 작품을 감상하면서 내내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 김환기,1957,아뜰리에,생 루이섬, 파리 - 새와항아리(1957)


▲ 항아리, 1955-56, 캔버스에 유채, 65 x80cm

김환기작가는 전남 신안군 안좌면 읍동리에서 출생했다. 1936년 일본대학 미술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연구과를 수료했다. 대학 재학시절 때 아방가드르미술연구소를 만들고 추상 미술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 후 김환기작가는 고국에서 작품활동 하게 되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항아리의 조형적인 특성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의 작품에는 항아리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이 볼 수 있는데 당시 종로 1가에 화랑까지 운영할 정도로 남다르게 항아리와 목기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 피난 열차_Refugee Train, 1951, oil on canvas, 37x53cm

우리나라의 항아리의 애착 때문인지 김작가는 집 마당 뿐아니라 집안의 창틀에도 항아리를 놓고 매일 감상했다고 한다. 작품활동 중 일이 풀리지 않으면 매번 항아리의 둥그런 부분을 스다듬으면 모든 일이 잘 풀렸다는 얘기도 전해질 정도다. 생전에 김환기작가는 본인의 얼굴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이 무엇이냐는 답변에 " 맘에 드는 부분은 없지만 구지 하나만 꼽는다면 당연 눈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눈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이고 특히 사물을 정확히 꽤뚫어 볼 줄 아는 자기 눈이기 때문에 가장 사랑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항아리에 대한 애착심이 컸다.

▲ 여인과 매화와 항아리, 1956, 캔버스에 유채, 60.5 x 41cm


60년대 6.25 한국전쟁 때에는 '피난열차', '항아리와 여인' 등 피난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도 전시되었다. 작품에는 군용 천막들도 볼 수 있는데 전쟁의 아픔보다는 사람에 대한 인간미와 애정, 그리고 명랑함이 묻어 나온다. 당시 우리나라의 미술흐름은 구상이었지만 김환기작가는 이러한 완벽한 구상작품이기 보다도 추상작품에 가까운 정도로 반추상미술의 획기적으로 선보였던 작가이기도 했다. 이에 그의 별명도 '추상미술의 선구자', '한국의 피카소', 현대미술의 거장'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또한 그의 제자들이 지어준 별명은 '학'이라고 한다. 그의 작품에도 새를 단순화한 '학'의 이미지가 많이 등장하는것을 볼 수 있다. 생전에 김작가는 180cm넘는 키와 마른체형이었고, 걸음걸이가 '학'을 닮았다고 한다. 또한  술에 취하면 장고를 치면서 학의 춤을 잘 췄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 무제 V-66,1966,1966, 코튼에 유채, 178x127cm

1952년 홍익대학교 교수로 취임하여 미술학부장과 학장,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심사위원과 대한미술협회 회장, 한국미술협회이사장 등을 엮임하던 중 1956년 파리행을 결심하고 떠나게 된다. 3년간 파리에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소재와 함께 향토민을 표현한 작품을 남기게 된다. 특히 이때 본격적으로 전통적인 소재 중에서도 가장 애정이 깃든 항아리의 작품이 등장하게 된다. 당시 파리에서는 앵포르멜 추상미학의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김작가의 작품에도 물감의 두께가 두터워지는 등의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파리 방송매체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많이 언급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을 보면 유난히 파란색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동해바다, 하늘 등 고국의 아름다움과 그리움을 나타내려고 했다. 또한 김작가는 " 왜 음악만 율동감과 리듬감을 표현할 수 있는가? 그림에서도 충분히 율동감을 표현할 수 있다"라고 말하면서 그림에도 음악적인 율동감을 표현하려고도 노력했다.

당시  황순원, 박두진, 노천명, 서정주 등의 문학인과도 친분이 많아 당시 현대문학의 표지를 부탁받아 그림을 그려주곤 했다. 이후 김작가는 십장생 등 자연의 소재까지 두루 넓혀 한국의 민족적 정서를 담기도 했다. 그의 호는 수화(樹話), '나무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이라는 그의 호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달, 산, 꽃 등 자연을 소재로 하는 작품을 많이 남기는 등 우리나라의 자연을 각별히 사랑한 사람 중 하나였다.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IV-70 _166, 1970, 코튼에 유채, 232 x172cm


이후 1963년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커미셔너로 참가하여 회화부분에서 명예상을 수상한 그는 모든 안정된 직업을 포기한 채 뉴욕행을 결심하고 본격적인 추상작품 활동을 하게된다. 당시 그의 나이 50세였다. 미국이라는 큰 무대로 나아가 추상작품을 하고 싶었던 그는 한국적인 소재를 담은 추상작품을 선보이게 된다. 낮에는 햇빛으로 밤에는 전기불로 하루에 16시간동안 작품에 매진하였다. 고국을 그리며 그린 점화작품들 속에는 한점을 그릴때 3-4번의 획을 반복해서 그리는 등 열정과 열의를 다해 그렸다.

그는 이러한 점화작품을 한달에 1작품씩 완성했을 정도니 작품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작품은 김광섭의 '저녁에' 시를 읽고 영감을 얻어서 그렸다고 한다. 시의 내용은 인생에서 우리의 운명적인 만남이 언젠가는 헤어져야 된다는 인연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시로서 김작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 내가 이렇게 찍은 점들이 저하늘 밤하늘의 별 수 만큼이나 찍었을까? 내가 그린 선이 저 하늘 끝에 닿아 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 보다도 더 많이 보이는 우리 강산" 이라는 일기를 남기도 하여 당시 뉴욕에 있을 때 그리운 우리나라와 친지,가족,제자들을 생각하면서 하나의 점을 그릴때마다 그리움과 애뜻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이 그림은 1970년대 한국일보 주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우리나라의 미술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 10만개의 점,1973, 코튼에 유채, 263x205cm

이러한 작품의 열정과 열의는 그의 몸을 혹사 시키게 하는 등 건강관리에는 소홀했었다. 이후 1974년 슈레브포트 반웰미술관에서 22회 개인전을 마지막으로 그는 뇌출혈로 병원에서 별세하게 된다.

그는 하늘과 땅, 10만개의 점 등 200호 넘는 대작을 발표하게 되었으며, 총 3000여점의 작품을 남긴 현대미술의 거장이었다. 이후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한 사람은 다름아닌 그의 아내 김향안여사였다. 그녀는 세계 각지에 그의 작품을 모아서 회고전 전시회를 개최하고 에세이집을 발간하는 등 김작가의 작품을 일반인들에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또한 부암동에 위치한 환기미술관을 건립하여 가까운 곳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느낄 수 있도록 해 준 장본이기도 하다 .

갤러리현대는 한국 근현대미술의 대가의 대규모 회고전을 2010년부터 진행해오고 있다. 박수근(2010년), 장욱진(2011년)에 이어 이번에 김환기 회고전(2012)을 준비했으며, 2012년 5월에는 유영국 화백의 대규모 전시를 예정하고 있다.

 


 

[오창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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