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 다리의병을 예방하는 송파다리밟기

기사입력 2012.02.06 11:19 조회수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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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호. ‘답교(踏橋)놀이’라고도 한다. 다리밟기 풍습은 전통적으로 경향(京鄕) 각지에서 정월대보름을 전후해서 행해지던 세시풍속으로 한 해 동안의 액운을 방지하고 다리의 병을 예방하며 또한 무병하기를 기원하는 데 있다.







다리밟기는 밤에 행하였는데 밤새도록 다리밟기를 하여도 이날만은 야간 늦게 통행을 금지하는 법까지 늦추어주었음을 보아 이 행사를 매우 소중하게 취급하였던 것 같다.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 芝峰類說≫(1614)에 보면 상원에 노는 답교놀이는 전조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평상시에는 심히 풍성했다. 사녀(士女)들이 나란히 줄로 서서 밤늦도록 끊이지 않았으며 법관(法官)도 금하지 않고 체포하지도 않았다. 지금에는 부녀들의 답교로 풍속화 되어 계속되어 왔다고 하였다.



또 ≪경도잡지 京都雜志≫·≪열양세시기 洌陽歲時記≫·≪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 등에는 답교를 하는 다리들은 서울의 중앙인 종로를 중심으로 해서 대소광통교(大小廣通橋)와 수표교(水標橋) 위에서 벌어졌고, 여기에 참가하는 사람들에 있어서도 상하 층 계급의 구별이 없이 도성사람과 여염(閭閻)의 서민층 사람들까지 모두 나와서 행렬이 인해인성(人海人城)을 이루었다. 여기에다 생소(笙簫 : 생황과 소)를 불고 북까지 울리며 요란스럽고 호화스러워서 극치의 장관을 이루었었다고 한다.

≪열양세시기≫에는 열두 다리를 밟는다고 명시한 것과 사월초파일에도 답교를 했다는 기록이 다른 점이다. 그리고 기록에서 부녀자들은 매년 정월 초하루나 15일을 기해서 3일 밤 혹은 16일 밤에만 부녀자들이 답교를 했다고 되어 있다.

송파 지역의 다리밟기는 타 지역과 달리 놀이로 변형되어 행해진 민속놀이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최소한 120여 년 이상의 전통성을 지니고 있으며 근래까지 몽촌(夢村)과 송파에만 전승되고 있다. 이 놀이는 정월대보름을 전후해서 3일간 놀았으며, 1925년 정월까지도 대단히 성대하게 행하여졌는데, 그 해 여름 대홍수가 나서 중단되었다고 한다. 그뒤 1959년 제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을 계기로 다시 복원되어 전승되고 있다.



[최승관 기자 pladas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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