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王), 후(侯), 장(將), 상(相)이 어찌 씨가 있단 말이냐!"

기사입력 2012.03.19 01:45 조회수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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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내가 평생동안 해야 할 일과 직업이 결정되어 있다면 그런 인생은 어떨까? 물론 그 일이 적성에 맞아서 마음껏 실력을 뽐내며 즐겁게 한다면 괜찮겠지만, 억지로 해야 한다면 삶은 얼마나 괴롭고 힘들까. 배를 타고 낯선 곳으로 모험을 떠나고 싶은데, 농사일을 하며 한 마을에서만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글공부를 좋아해 과거시험을 봐서 높은 관리가 되고 싶은데, 머슴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그런 삶을 어찌 제대로 살아낼 수 있을까. 어느 부모에게 태어 나느냐에 따라 평생 해야할 일이 결정되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

중국의 진(秦)나라는 춘추전국시대의 분열을 끝내고 천하를 통일하지만, 폭정을 거듭해 마침내 천하를 다시 난세로 만들기 시작한 '진승과 오광의 난'이 일어난다. "왕(王), 후(侯), 장(將), 상(相)이 어찌 씨가 있단 말이냐!"라는 말은 '진승과 오광의 난'을 일으키며 진승이 했던 말이다. 남에게 고용되어 농사일을 하던 미천한 신분이었던 진승은 노역을 하기 위해 끌려 가다가 큰 비가 와서 제 시간에 도착을 못하게 되자 참수를 당할 것이 두려워 무리들과 함께 진나라에 반기를 든다. 진승은 과거 초(楚)나라 말기의 도읍이었던 진성을 점령한 뒤에 왕위에 올라 국호를‘장초(張楚)’라 했지만, 진나라 군에 패해 후퇴하다가 마부인 장고에게 살해당했다. '진승과 오광의 난'을 시작으로 유방이나 항우 등의 많은 영웅호걸들이 천하에 등장함으로써 중국 역사 중 가장 매력적인 시대 중에 하나인 '초한지'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진승은 자기 땅도 없는 가난한 농민의 신분으로 반란군을 이끌고 나라를 세워 왕의 자리까지 올랐다. 비록 끝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미천한 신분으로 난세에 뛰어들어 한 시대를 멋지게 살아낸 그의 삶은 신분의 차이 때문에 고통과 어려움을 느꼈을 많은 동양인들에게 두고두고 큰 용기와 힘을 주었다.

난세엔 언제나 신분의 변동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난세를 평정하기 위해서는 오직 실력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유방의 휘하에서 용맹을 떨쳤던 번쾌는 개고기를 팔았던 신분이었고, 하후영은 말을 기르고 수레를 모는 일을 했지만, 난세가 시작되자 유방을 도와 천하를 평정해 높은 신분이 되었다. 유방 또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황제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나 난세가 끝나고 다시 치세가 되면, 높은 자리에 오른 이들은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그러면서 신분의 차이와 차별이 다시 생기기 시작해 많은 이들에게 불만이 쌓여가다가 다시 폭발하면 또다시 난세가 시작되면서 역사는 끊임없이 난세와 치세를 반복해 왔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떤 위치에 있을까. 조선이 개국과 쇄국의 길에서 갈팡질팡 할 때부터 일제시대를 거쳐, 6.25 전쟁으로 남북으로 갈라졌을 때까지가 난세였다면, 6.25가 끝나고 지금까지의 시기가 치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치세가 어느덧 60년, 두 세대가 넘어 간다. 민주주의 사회라 법적으로는 신분의 차이가 없지만 자본주의 사회이기에 신분의 차이는 결국 돈으로 생겨났다. 특히 IMF 이후로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계급차이가 극심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많이 가진 자는 자신의 것을 지키고 더 불리기 위해서만 노력하고, 못가진 자는 자기가 가진 것마저 빼앗기고 있다. 가진 자의 자식은 유학을 가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해 돌아와 높은 자리에 올라 부모의 자리를 이어받고, 못가진 자의 자식은 대출받아서 대학을 졸업했지만,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도 어렵고, 취직해도 빚 갚기에 벅찬 세상이다. 이런 극심한 빈부의 차이가 계속 된다면 결국 우리나라는 많은 불만과 혼란으로 다시 난세로 치달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못가진 자의 자식으로 태어나도 원하는 것을 마음껏 배우고 경험할 수 있어서 가진 자의 자식과 당당하게 실력으로 겨룰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만 즉, 개천에서 용이 언제든지 날 수 있는 세상이 다시 와야만 난세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2,000년 전 중국에서도 왕과 제후와 장군, 재상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고 외쳤던 한 농민이 왕이 되었는데, 2012년 민주주의와 과학기술이 발달한 이 시대에 어떤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 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결정될 수는 결코 없다. 그 어느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든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서 각자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쳐 볼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을 꿈꾼다.

[정기석 기자 aeltr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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