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가 한 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

기사입력 2012.03.12 01:06 조회수 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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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년이라는 시간동안 많은 나라들이 치열하게 싸웠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엔 감동적이고, 안타깝고, 슬프고, 아쉽고, 때론 믿어지지 않는 매력적인 이야기가 많이 있다. 능력있는 친구를 위해 자신이 스스로 아랫자리에 앉은 포숙의 이야기, 자신의 두 다리를 자른 방연을 마릉에서 죽인 손빈의 이야기, 소 1000여 마리의 꼬리에 불을 붙여 연나라 군을 공격한 전단의 이야기, 상인의 신분으로 진나라 태자의 한 서자에 불과했던 자초에게 투자해 일약 진나라의 승상이 된 여불위의 이야기 등. 그 중에서도 내가 최고로 뽑는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실패로 끝나고만 형가의 진시황 암살 사건이다.

오랫동안 분열되어 있던 천하를 통일하고, 처음으로 황제라는 호칭을 사용해 시황제로 불린 사나이, 그의 천하통일을 막을 수 있었던 가장 큰 기회를 형가가 놓치면서 결국 천하는 진나라의 것이 되었다. 형가의 비수가 시황제의 몸을 스치기만 했어도 시황제는 죽었을 것이다. 그러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진나라는 그래도 천하를 통일했을까? 시황제의 맏아들인 부소가 천하를 통일하고 안정적으로 다스려 항우와 유방의 싸움 같은 건 없었을까? 역사에 만약이라는 말은 없지만, 그래도 역사책을 읽을 때면 언제나 만약이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역사는 늘 그렇게 아쉬움과 미련을 남겨준다.

"장사가 한 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말은 형가가 연나라 태자 단의 부탁을 받고 진시황을 만나러 가기 위해 떠나면서 불렀던 노래의 마지막 구절이다. "바람 소리 소슬하고 역수는 차갑구나! 장사가 한 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 형가의 이야기가 동양사회에 퍼진 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전쟁터로 떠나며, 혹은 배를 타고 멀리 돈을 벌러 가며 형가의 이 노래를 읊고 또 읊었을까. 형가의 노래를 읊을 때면 언제나 슬픈 비장감과 자신의 모든 걸 쏟아 내겠다는 굳은 의지가 느껴지곤 한다. 아직까지는 인생을 살며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해 본 적이 없지만, 언젠가 그런 날이 온다면 나도 형가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길을 갈 수 있을까.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일본의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는 형가처럼 굳건히 그 길을 갔다. 수많은 이름모를 독립투사들 또한 그러했다. 자신과 가족의 이익이 아니라 오직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런데 그동안 우린 그 분들의 후예를 어떻게 대접해 왔을까. 일본에 헌신하고, 나라의 독립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돈만 번 이와 그 후예는 잘 먹고 잘 살면서 나라를 좌지우지 해 왔는데, 그 분들의 후예는 별 대접도 못받고 대부분 소리없이 울분을 참으며 살아왔을 뿐이다. 또다시 나라를 빼앗기거나 전쟁이 일어난다면 과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젊은이가 얼마나 있을까. 애국심을 요구하기 전에 우선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와 그 가족을 든든히 뒷받침 해 줄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야만 형가처럼 안중근의사처럼 나라를 위해 굳건히 자신의 길을 가는 이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정기석 기자 aeltr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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