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삶겨 죽는 것은 당연하구나!"

기사입력 2012.03.26 01:16 조회수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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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읽었던 어떤 책엔가 '이 지구 상에 있는 모든 책이 불태워지는데, 한 권의 책만 꺼낼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책을 꺼내겠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주저없이 말한다. 사마천의 '사기'라고. 읽고 또 읽고 다시 읽어도 가슴을 흔들고,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는 책, 사기. 읽을 때마다 하루에도 열 번 씩 방바닥을 굴러야 하는 고통을 견디며 '사기'를 썼다는 사마천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책, 사기. 각 인물에 대한 사마천의 평 한 마디 한 마디는 또 얼마나 멋진가. 그 '사기' 중에 내가 가장 많이 읽었고, 가장 좋아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또 읽고 싶어지는 이야기가 바로 유방의 천하통일에 가장 큰 공헌을 한 한신에 대한 이야기인 '회음후열전'이다.

동네 아낙한테 밥을 얻어 먹는 백수건달 한신이 동네 불량배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간 이야기로 시작해 유방의 대장군이 되어 멋진 전략으로 승승장구해 제나라의 왕이 되는 영광의 시간을 거쳐 유방의 처인 여후에게 붙잡혀 목을 베이고, 한신에게 독립해야 한다는 계책을 냈던 괴통을 유방이 용서해주는 이야기로 끝맺는 '회음후열전'. 한신이 제나라왕 자리에서 쫓겨나 초나라왕으로 옮겼을 때, 역모죄로 유방에게 사로잡혔는데, 그 때 한신이 '날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죽인다.'는 토사구팽을 언급하며 했던 말이 바로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삶겨 죽는 것은 당연하구나!"라는 말이다. 유방은 한신의 죄를 용서하고 회음후로 삼았지만, 후에 한신은 모반하려다가 여후에게 붙잡혀 목을 베이고 만다. 유방, 항우와 함께 천하를 삼분하자는 괴통의 계책을 들었다면 어찌 한신이 여후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했겠는가. 한신의 이야기는 능력있는 공신의 존재가 난세를 평정한 후 지존에게 얼마나 부담스러운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유방은 천하를 평정하고 성이 다른 일곱 명의 공신을 왕으로 봉했지만, 유씨가 아닌데 왕이 된 자들을 멸망시키는 정책을 씀으로써 공신들의 반란이 자주 일어났다. 일본의 토요토미히데요시는 전국시대를 평정한 후, 공신들에게 줄 토지가 부족하고, 수많은 사무라이들이 일자리가 없어지는 문제가 생기자 조선을 침략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역사 중에 공신 문제를 가장 과감하게 해결해 버린 이가 있다면 아마 그는 조선의 태종 이방원일 것이다.

세종시대가 그렇게 태평성대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오직 세종대왕의 능력 때문이었을까? 태종 이방원이 재위기간 내내 공신과 외척을 피의 숙청으로 제거해주지 않았다면, 세종 또한 공신과 외척의 세력 때문에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없었을 것이다. 세종의 외삼촌들과 장인어른까지 죽인 태종 이방원의 결단이 있었기에 다양한 인재들이 마음껏 활약한 세종시대가 태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의 역사는 슬프게도 태종, 세종 2대 동안 만들어 놓았던 멋진 시대를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집권한 후 공신들에게 권력을 줌으로써 끝맺고 만다. 세종의 맏아들인 문종이 좀 더 오래 살았거나  단종이 오랫동안 집권했더라면, 수양대군이 태종 이방원처럼 토사구팽을 실행해서 공신들을 확실히 척결했다면 조선의 역사는 훨씬 더 풍요로웠을 것이다. 늘 조선의 역사를 대할 때마다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수양대군의 존재는......

[정기석 기자 aeltr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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