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결국 이 곳에서 곤경에 처했으니 이는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 하지 못한 탓이 아니다…

기사입력 2012.04.10 00:51 조회수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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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역사 속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온라인게임이 나와서 한 명의 전사 캐릭터를 선택해야 한다면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제갈공명이나 주유처럼 전략이나 전술을 짜는 캐릭터가 아니라 오직 전투만 하는 캐릭터라면? 삼국지에서라면 여포나 장비, 관우, 하후돈, 마초, 조운, 장료 등이 있을텐데, 필자는 주저없이 힘은 산을 뽑을 수 있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하다고 자부한 초한지의 주인공 항우를 선택할 것이다.

동양 역사에서 힘과 기개, 배짱, 젊음, 포부, 용맹, 야망, 자신만만 등의 이미지를 너무나 잘 가지고 있는 인물 항우. 스물 네 살에 역사에 등장해 서른 한 살에 사라진 진정 짧고 굵은 삶을 살았던 사나이 중에 사나이. 그의 일생은 어느 영화보다도 더 드라마틱하다. 회계산에 행차하는 진시황의 모습을 보고 '내가 저 녀석을 대신해 줄 테다.'라고 말한 야망의 사나이. 거록의 전투에선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도 가라앉힌 후, 군사들에게 3일 치 식량만 제공해 결사적으로 진나라군과 아홉번을 싸워 진나라 주력군을 궤멸 시킨 뛰어난 승부사.

항우는 '진승과 오광의 난'이 일어난 후 진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숙부인 항량을 따라 거병했다. 항량이 전사한 후 초군을 이어받아 승승장구해 천하의 패자가 되지만, 이후 유방의 도전을 받다가 결국 해하의 전투에서 패해 자결하고 만다. "지금 결국 이 곳에서 곤경에 처했으니 이는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 하지 못한 탓이 아니다."라는 말은 항우가 해하의 전투에서 패하고 포위망을 탈출하다가 마지막이 다가옴을 느끼고 했던 말이다. 항우의 초나라군은 8년이라는 시간동안 70여 차례의 전투에서 눈부신 승리를 거두었지만, 결국 마지막 한 번의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모든 걸 잃었다.

항우의 말처럼 항우는 결코 전투를 못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은 수십 번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승리한다 해도 결국 끝내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항우는 각 전투에서의 승리에만 급급했지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전략적인 큰 그림은 그리지 못함으로써 다 얻은 천하를 싸움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유방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항우는 그저 한 군단의 장군으로 족한 인물이지 한 나라의 리더로서는 부족한 게 너무나 많았다. 한신이 유방과의 대화에서 말했던 항우의 단점으로는 어진 장수를 믿고 일을 맡기지 못한다는 것, 공을 세운 이에게 벼슬을 줄 때 아까워 한다는 것, 자기가 친애하는 정도에 따라 제후들을 왕으로 삼은 것, 항우의 군대가 지나간 곳이면 학살과 파괴가 심했다는 것 등이 있다. 특히, 유방과 항우를 비교할 때 가장 많이 비교되는 것이 부하를 믿고 쓰는 것이다. 항우는 하나 뿐이었던 참모 범증의 의견도 제대로 듣지 않아서 범증은 항우를 떠났지만, 유방은 한신과 장량, 소하 등을 믿고 씀으로써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항우는 모든 걸 잃고 죽음이 가까이 오자 자신의 실패를 하늘탓으로 돌렸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서 포위망을 탈출했으면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었지만,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였는데, 내가 왜 건너겠는가?"라고 말하며 또다시 하늘 탓을 하며 다시 일어설 기회를 버리고 한나라군과 싸우다 자결하고만다. 제나라의 왕으로 천하를 유방, 항우와 함께 삼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한신도 여후에게 죽임을 당할 때, "아녀자에게 속은 것이 어찌 운명이 아니랴!"라고 말하며 자신의 실패를 운명탓으로 돌렸다. 초한지 세 명의 주인공 중 결국 비극으로 끝난 두 명의 주인공이 자신들의 실패를 하늘과 운명탓으로 돌린 것이다.

하늘은 누구에게나 기회를 준다. 항우는 항복한 진나라군을 잘 대해줌으로써 진나라 백성들에게 호의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진나라 군사 이십 여만명을 모두 살해해 진나라 백성들의 원한을 샀고, 관중에 도읍을 했으면 얻을 수 있었던 지리적 이점을 버리고 팽성을 도읍으로 삼았다. 홍문의 회에선 유방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머뭇거리다가 놓쳐 버렸고, 유방보다 먼저 한신을 얻었지만, 한신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유방에게 빼앗겼다. 진정 하늘이 항우를 망하게 한 것일까? 하늘은 항우에게 줄만큼 좋은 기회를 주었다. 한신도 마찬가지다. 괴통이 천하를 삼분하자는 좋은 계책을 냈지만, 유방이 자신을 써주었다는 의리를 내세우며 거절했다가 천하가 안정된 후에 반란을 도모하다 죽임을 당했다. 괴통이 한신을 설득할 때 이런 말을 했다.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벌을 받고, 때가 이르렀는데도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입는다."라고.

아무리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해도 희망을 갖고 찾고 구하면 하늘은 우리에게 몇 번의 기회를 반드시 준다. 그 기회가 오면 현재의 삶을 바꾸는 것에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잡아보자. 모험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망설이며 현재에 안주하다 보면 결국 항우와 한신처럼 될 뿐이다. 기회는 단지 몇 번 뿐이다. 오면 잡아야 한다. 두려움 없이...

[정기석 기자 aeltr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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