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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지금의 시흥대로는 정조대왕 때 만들어졌다.
③ 지금의 시흥대로는 정조대왕 때 만들어졌다.
정조대왕은 1789년, 아버지 무덤을 현륭원(화성시 안녕동 위치)으로 옮긴 뒤 매년 능을 참배키 위해 많은 능행을 하게 된다. 정조대왕은 능행차에 어떤 길을 택했을까? 원래 정조대왕은 지금의 남태령을 넘어 과천과 인덕원을 거쳐 가는 길을 선택했었다. 그러나 높은 고개를 지나야 했고, 많은 교량을 지나가야만 했다. 정조대왕뿐만 아니라 수행했던 관리들도 힘들어서 지치기 일수였다. 지금의 남태령 고개를 보라. 차량통행 아니면 누가 그 길로 통행하겠는가? 남태령 고개는 지금이나 예전이나 오르기 힘든 고개였을 것이다. 당시의 '원행정례'에선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능행길은 서울에서 화성까지 거리는 85리이며, 교량의 수는 21개이다. 정조대왕은 능행길을 수정하기로 결심한다. 야사에는 정조대왕이 능행길 노선을 수정한 계기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능행길은 노량의 배다리(주교)를 지나 용양봉저정, 만안고개, 금불암, 금불고개, 사당리, 남태령, 과천행궁, 찬우물점, 인덕원천교, 갈산점, 원동점, 사근평행궁, 지지대고개를 거쳐 수원화성으로 들어오는데, 찬우물점 근처에는 김약로의 무덤이 있었다. 김약로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으뜸 선봉에 섰던 사람인 김상로의 형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정조대왕은 이 무덤을 피해 노선을 바꾸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어쨌든 정조대왕은 신작로(지금의 시흥대로)를 건설하게 이르렀다. 초기 능행길 보다 비교적 언덕이 적고 공사의 기간도 단축되었다. 새로운 능행길 노선의 총 책임자를 경기감사 서용보를 임명하고 토지수용비 및 노동임금도 철저하게 지불해 주었다. 건설비용의 예산은 평안도 남당성 축성공사비로 남은 돈 1만 3천냥을 쓰게 했다. 드디어 1794년에 신작로를 완성하게 된다. 새로운 능행길의 노선이 확 바뀌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된 이 길의 거리는 83리, 환산하면 44.82km정도된다. 거리는 줄었지만 교량의 수는 조금 많아졌다. 총 24개의 다리가 놓여진다. 지금의 안양시 만안교, 만안제 등이 당시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오늘날의 시흥대로는 탄생하게 되었다. 능행길은 1천 7백여 명의 인원이 동원될 만큼 길은 넓어야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길은 조금씩 확장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연로의 너비가 대략 24척(10m)이라고 전해진다.
수원서 '살기좋은 도시' 만들어봐요! -  2011 마을 르네상스 학교 수료식 행사
수원서 '살기좋은 도시' 만들어봐요! - 2011 마을 르네상스 학교 수료식 행사
3일 2011 마을 르네상스 학교 최종발표회 및 수료식 행사가 수원시 평생학습관 2층 세미나실에서 개최됐다.마을 르네상스 학교는 지난 5월에 문을 열어 주민과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해 소통의 장을 만들고, 주민들 스스로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마을 발전계획 수립 능력을 배양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이번 마을 르네상스 학교에 입학하여 수료하는 마을은 고색동, 영통1동, 영통2동, 율천동, 세류2동, 행궁동 팔부자번영회 총 개 마을이다. 이 마을들의 주민 총 36명은 매주 토요일 마다 교육을 받고 각 마을별로 지역적 특성과 참신한 아이디어를 서로 토의하고 연구하는 등 내실있는 수업을 병행해 왔다. 또한 각 마을별로 전문가, 코디, 조교 등이 참여하여 마을의 문제점을 검토하고 마을 사업에 전반적인 계획서를 검토 하는 등 이론과 실무를 병행해 왔다. 참여한 마을 주민들은 교육 참여도, 마을 수립 발전계획서 등의 평가지표로 특별상, 개근상 등이 주어졌다. 이번 마을 르네상스 학교 수료를 한 6개팀은 내년 마을르네상스 공모사업에 응모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며, 교육 이수과정에서 만들어진 사업계획서는 좋은 마을 만들기 위원회 심의 를 거쳐 공모사업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이재준 제2부시장은 축사에서 " 수원의 미래 발전을 위해 마을만들기 사업은 꼭 필요한 사업 중 하나이다.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도시, 살기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시민 여러분의 관심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면서 "수원 시민 개개인이 리더가 되어 수원발전에 이바지해 줄 것"을 당부했다.
수원소방서, 신풍동 마을서 '화재없는 안전마을 조성행사' 열려
수원소방서, 신풍동 마을서 '화재없는 안전마을 조성행사' 열려
29일 수원 팔달구 신풍경로당에서 화재로부터 안전한 주거환경을 조성키 위해 수원소방서 '화재없는 안전마을 조성행사'가 신풍동 35통 주민, 공무원, 전기안전공사, 삼성전기, (주)삼천리 도시가스공사 등 11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이번 행사는 앞서 지난 7월 대한건축사협회 수원시지역회와 '업무제휴 협약식' 체결 이래 오목천 온정마을과 지동 9통마을 155가구를 대상으로 '단독경보형화재감지기'를 설치한데 이어 세번째로 화재없는 안전마을을 지정하여 실시되는 행사이기도 하다. 수원소방서(서장 이봉춘)는 그동안 화재로 부터 전쟁을 선포하고 문화재 보호시설 및 주요시설물을 대상으로 집중 화재 진압 훈련을 수시로 해온 바 있다. 신풍동은 화서문 인근 (선경도서관후문방향)에 위치한 곳으로 현재 100가구(215세대)가 거주하고 있으며, 소방차 진입로가 없고 대부분의 건물이 노후화 되어 화재로 부터 취약점이 많은 지역이다. 이에 수원소방서는 노후화된 주택 내부에 화재 위험이 취약한 곳을 대상으로 '단독경보형화재감지기' 설치하여 인명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날 행사에는 신풍동 주민 대표 (통장)에게 명예 소방관을 위촉하고 소화기 전달식도 가졌다. 또한 신풍동 35통 주민들을 대상으로 화재신고 요령, 소화기 사용방법 및 화재 안전에 대해 교육하고 모의 화재 진압 훈련도 체험 하는 시간도 가졌다. 이어서 '화재 없는 안전마을' 현판식도 함께 진행됐다. 수원소방서(서장 이봉춘)는 신풍동 35통 지역은 주택 노후화 및 소방도로도 없는 화재 위험지역으로 인명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한 뜻으로 행사를 마련했다며 앞으로 화재로 부터 안전한 주거지 조성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완석 도의원은 신풍동 주택을 돌아보며 '단독경보형화재감지기'를 직접 설치하는 등 월동기간 중 화재예방과 주민안전에 더욱 힘써 줄 것을 당부했다.
'수원 지동서 추억의 골목길 축제 한마당' 열려
'수원 지동서 추억의 골목길 축제 한마당' 열려
26일 새마을지도자 지동협의회 주최하고 7개의 지동자치위원회 단체가 후원하는 '추억의 골목길 축제'가 수원 지동 일대에서 개최됐다. 이번 행사에는 전통 연 전시장 및 연 만들기 체험 부스를 마련하여 직접 연을 만들어서 날려보는 체험도 진행됐다. 고불고불한 골목길은 새담장으로 개성있게 단장되어 있고 양 옆에는 지난 8월부터 2개월에 걸쳐 수원 지동의 모습을 담은 수기사(수원을 기록하는 사진가회)작가들의 사진작품과 주민들의 추억앨범 사진이 함께 나란히 전시됐다. 골목길 중간 중간 마다 사방치기 놀이를 할 수 있도록 바닥에 그려 놓아 옛 골목길을 보는 듯 했다. 행사장 입구에서는 구수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른다. 따뜻한 오뎅국물과 맛있는 떡볶이가 관객들의 미각을 자극시킨다. 빨간 앞치마를 두른 주민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분주해 보인다. 바닥에 오손도손 앉아 공기놀이에 매료된 아이들은 시간가는 줄 모른다. 그 밖에 팽이치기, 재기차기, 투호, 윷놀이 등 다채로운 전통놀이가 마련됐다. 지동 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개최된 이번 행사는 다양한 골목놀이 체험과 문화공연을 통해 이웃과 정을 나누는 뜻깊은 행사로 주민들의 마음에 기억될 것이다.
'오늘, 또 다른 이날'  미술, 수원에서 길찾기 세미나
'오늘, 또 다른 이날' 미술, 수원에서 길찾기 세미나
25일 수원예총 2층에서 '오늘, 또 다른 이날' 미술, 수원에서 길찾기 세미나가 개최됐다. 수원예총이 주최하고 Start운영위원회가 주관하는 이번 세미나는 조관용 미술평론가의 사회로 시작됐다. 엄광현 미술이론가는 일본의 사례를 통해 본 지역미술의 지역성과 국제화 전략을 발제하면서 비영리 문화예술단체인 NPO를 소개했다. NPO는 Non-Profit Organization의 약자로 미국과 일본 등에서 공식적으로 쓰이는 용어이다. 즉 비영리사업을 영위하는 모든 조직이 이에 포함된다. 학교, 종교기관, 사회복지기관, 연구기관 등이 NPO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99년말 국회를 통과해 2000년 4월부터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의 재정을 계기로 '비영리민간단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쓰이고 있다. 일본의 경우 NPO단체의 3/2정도가 문화예술단체인 만큼 문화예술분야의 비영리 민간단체가 많이 활동하고 있다.2000년대 이전의 NPO 문화 예술분야 활동의 형태를 보면 공공시설을 통해 어떻게 문화예술을 보여줄 것인가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면 2000년대 이후는 낙후된 지역의 재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주거민들과 소통하면서 문화예술을 접목하는 사업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새로운 문화예술운동의 패러다임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의 NPO단체들은 1995년에 발생한 한신대지진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하루에 6만명 이상의 대인원이 자발적으로 또는 단체를 구성하여 볼런티어에 참가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여줬던 때이기도 하다. 오이타대학의 토요자마는 1995년을 일본 '볼런티어의 원년'이라고 부를 정도로 시민들의 자원봉사개념의 시민사회운동은 급속히 퍼져 지금의 3만 4천여개의 NPO단체들을 만들어 냈다. 엄광현 미술이론가는 '아사히 아트 페스티벌', '에치고츠마리 트리엔날레', '나카노죠 비엔날레' 등의 일본 문화예술단체 NPO 활동성공사례를 보여주면서 일본 NPO문화예술단체의 지역주민과의 소통을 통해 문화예술의 컨텐츠를 차별화 시킨 점을 높게 평가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문화예술단체 운영조직의 독립성 부재 및 지역과의 유대관계 및 거점화의 미약 등이 문화예술단체의 발전을 저해시키는 요소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이섭 전시기획자는 수원미술의 탈중심화 전략을 위한 몇가지 제안을 제시하였다. 이분법적인 서구중심의 사고를 통해 바라본 중앙과 주변이라는 개념을 언급하면서 수원이라는 지역이 갖는 특성을 이해하고 중앙과 주변의 차이를 인지하여 새로운 지역적 특성의 활로 개척을 해야 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수원주거미술행동'의 가제를 통해 일정기간 중 작가를 초대해 주어진 과제 및 과업의 완수를 목표로 작품을 제작하게 하고 수원 지역 내 예술활동을 돕는 일종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제시하였다. 수원미술전시관 조두호 기획운영팀장은 수원은 동시대 예술가의 작업을 수집하여 전시와 교육을 수행하는 미술관이 부족하다는 말과 함께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미술관 건립보다는 우선적으로 예술가들에게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확대 설치해야 된다고 말했다. 단순히 시설과 인력으로 채워진 레지던시가 아닌 지역적 특색을 고려한 주제와 목표를 담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개발 육성되어야 된다고 덧붙였다.기획의 전문성과 심사의 공정성이 확보되어 있는 민간 주도 문화시설에 대한 적법한 지원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하면서 논의를 마쳤다.
① ´수원화성´에는 5개의 비밀의 문이 존재한다!
① ´수원화성´에는 5개의 비밀의 문이 존재한다!
수원화성에는 ´비밀의 문´이 존재한다. 이를 ´암문´이라 일컫는다. 암문은 숲이 우거진 곳이나 성곽 깊숙한 후미진 곳에 만들어 적이 찾기 힘들게 만들었다. 암문은 쉽게 이야기 하면 적의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출입할 수 있는 작은 문을 말한다.수원화성에는 동암문, 서암문, 남암문, 북암문, 서남암문이 5개의 암문이 있다. 암문의 기능은 성내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운반하고, 구원요청은 물론 적의 눈에 띄지 않게 군사를 이동시켜 암암리에 역습을 하는 등 중요한 용도로 사용됐다. 보통 암문은 평지보다는 산성에 주로 축조되는데 이는 지형적으로 설치가 유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암문은 문루없이 홍예형식과 평거형식 등이 있는데 수원화성에는 홍예형식으로 축조했다. 그렇다면, 암문은 언제부터 만들어 사용되었을까? 암문은 성곽의 일부분인 축조물이기 때문에 성곽의 기원부터 알아봐야 할 것이다. 성곽의 기원은 언제부터 만들어 사용됐는지는 연대가 분명하지 않지만, BC 194년의 ´왕검성(王儉城)´과 BC 18년, ´백제의 위례성(慰禮城)´의 역사 기록으로 보아 성은 오래 전부터 축성되어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백제초기에 축성된 ´풍납토성´과 132년에 축성된 ´북한산성´으로 보아 당시의 성의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성곽은 시대를 거듭해 발전됐고, 또한 선조들의 지혜가 더해 ´암문´이라는 비밀통로를 만들어 실용적으로 사용됐다. 수원화성에는 5개의 암문 중 남암문은 미복원 상태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