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는 순간 순간이 치열한 생존경쟁이다. 배추잎은 배추벌레가 갉아먹고, 배추벌레는 참새가 쪼아먹고, 참새는 매가 잡아먹고, 매는 포수에게 잡힌다.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바로 다른 존재의 먹이감이 된다. 고로 생태계의 존재들은 적을 속여서 자신을 보호하거나 먹이감을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사마귀나 여치, 메뚜기처럼 풀이나 나뭇잎에서 주로 사는 곤충들은 대부분 몸이 녹색이어서 천적에게 잘 보이지 않는다. 거미는 먹이감이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거미줄을 공중에 만들어 놓음으로써 먹이를 사냥한다. 치타는 지상에서 가장 빠른 단거리 육상 동물이지만, 먹이감을 사냥할 땐 초원의 풀이나 나무를 이용해 최대한 자신을 숨기며 천천히 조심스럽게 먹이감에 다가간다. 치타가 접근하고 있는 걸 아는 순간 먹이감은 달아나 버리기 때문이다. 치타의 사냥 성공률은 30%도 되지 않는다. 사냥에 실패하면 소모된 에너지를 회복하기 힘들기 때문에 사냥의 실패는 바로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스피드가 주사냥기술인 치타에게 먹이감의 눈을 속여서 자신을 숨기며 접근하는 기술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지금부터 사냥을 시작하겠다고 알리고 덤비는 무모한 치타는 없다.
사람도 생태계의 일부다. 생태계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사람이 자신 뿐만아니라 가족과 마을, 그리고 크게는 나라의 생존을 걸고 펼치는 생존경쟁이 바로 전쟁이다. 동양의 역사는 전쟁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요한 역사 기록은 대부분 전쟁에 대한 기록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위인도 전쟁과 많은 관련이 있다. 이순신장군, 광개토대왕, 왕건, 김유신장군, 강감찬장군, 을지문덕, 계백 등. 그러한 동양의 수많은 전쟁을 겪은 이들이 늘 곁에 두고 읽었던 책이 한 권 있다면, 바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손무가 쓴 '손자병법'이다. 손자병법은 삼국지와 함께 가장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진 동양고전일 것이다. 현대에서도 손자병법은 군사학 뿐만아니라 경영 분야 등에서 폭넓게 읽혀지고 있다.
"전쟁이란, 속이는 도(道)이다."라는 말은 손자병법 계편에 나온다. 손무는 능력이 있는데 적에게는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용병을 하되 적에게는 용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해야 한다며 전쟁을 할 땐 적을 속이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6.25 전쟁 때의 중공군처럼 병력이 적보다 압도적으로 많으면 별 전략 없이도 적을 쉽게 제압할 수 있지만, 병력이나 물자가 적보다 적을 때 승리하려면 적을 속이고 적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이 필요하다. 즉, 호랑이가 토끼를 잡을 때보다 토끼가 호랑이를 잡아야 할 때 뛰어난 전략이 더욱 더 중요한 것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장군이나 전략가 중 많은 수는 소수의 병력으로 뛰어난 전략을 통해 다수의 병력을 제압한 경우이다. 열 세 척의 판옥선으로 130여 척의 일본수군을 물리친 이순신장군의 명랑해전이 대표적이다.
전쟁에선 오직 승리만이 있을 뿐이다. 패배하면 사랑하는 가족들이 적의 노예가 되고, 마을은 불타고, 나라는 빼앗겨 식민지가 된다. 적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 것이다. 고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하는 것이 전쟁이다.
손무의 후예로 알려져 있는 손빈은 위(魏)나라의 장군인 방연에게 두 다리를 잘리는 형벌을 당한 후 제나라로 도망쳐 군사가 된다. 후에 제나라군이 위나라로 쳐들어 갔을 때, 손빈은 장군인 전기에게 위나라 땅에 들어서면 첫날에는 아궁이 10만 개를 만들게 하고, 다음 날에는 아궁이 5만 개를 만들게 하며, 또 그 다음 날에는 아궁이 3만 개를 만들게 한다. 방연은 제나라 군대를 뒤쫓은 지 사흘째가 되자 제나라 군사가 위나라 땅에 들어온 지 사흘 만에 달아난 병사가 절반을 넘어섰다며 몹시 기뻐하고는 날쌘 정예 부대만으로 제나라 군대를 급히 뒤쫓았다가 마릉에서 매복하고 있던 제나라 군대에 크게 패해 죽게 된다. 마릉전투는 전쟁에서 훌륭한 속임수 전략이 얼마나 큰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잘 보여준다.
세상의 규칙은 강자가 정한다. 그 규칙대로 싸우면 언제나 강자가 이길 뿐이다. 복싱선수와 초등학교 학생이 복싱 규칙대로 링 위에서 맞붙으면 99.9%이상 복싱선수가 이기겠지만, 초등학교 학생이 총을 들고 싸운다면 결과는 전혀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려면 강자의 규칙을 무시한, 강자를 속일 수 있는, 강자가 생각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대기업과의 싸움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그래서 더욱 더 인재가 중요하다. 대기업을 속일 수 있는, 그래서 대기업을 이길 수 있는 뛰어난 전략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