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권, 내 말은 그게 아니고, 162x89cm, Acrylic on Canvas, 2011 3월 28일부터 4월 3일까지 서울 갤러리 이즈에서 이상권 개인전이 열린다. 그의 그림은 앙이 르페브르가 말하는 도시의 일상성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 처럼 느껴진다.
앙리 르페브르는 현대 산업사회의 특징인 일상성은 도시를 무대로 일어나며, 사람들은 그것을 끔찍하게 지겨워하면서도 동시에 거기서 밀려날까봐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교통지옥 속의 출퇴근이라는 강제된 시간, 지겨워하면서도 할 수 없이 일을 해야 하는 의무의 시간, 그리고 술집과 유원지에서 보내는 자유시간이라는 세 가지 양태의 시간 속에서 헛살고 있다는 것이다.
강제된 시간은 점점 증대되고 자유 시간은 줄어드는 속에서 극도의 권태, 만성적인 피로에 시달리면서도 사람들이 일상성에서 떨려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실직의 공포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실직은 단순히 돈을 못 버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상실감을 동반한다. 이러한 권태, 피로, 공포감을 잊기 위해, 아니 잠시라도 해방되기 위해 사람들은 여가 시간에 기대를 건다. 아마도 술집은 그것이 어떤 형태든 간에 그와 같은 여가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장소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 안에서 사람들은 어떤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위로를 받기에는 세상은 너무 병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상권의 그림은 그것에도 회의적인 것처럼 보인다.'이 세상은 몰락한 백만장자가 기증해준 우리의 병실'이라는 엘리어트의 시귀처럼. 인용이 길었지만 그의 그림은 그 범위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건 놀라운 것이 아니다. 첫 개인전 이후 그의 삶은 삶 자체에 바쳐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청년이 되어 중년이 된 자신을 보며 그에 관해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 이상권, 늦게 온 친구2, 116x80cm, Oil on Canvas, 2011 그의 이번 전시는 주로 술집과 식당과 거리가 주된 장소이다. 주로 중년 남자들 그곳에 모여서 마시고, 옛날이야기를 하고, 정치가들을 씹고 아니면 혼자 늦은 점심을 먹는다. 그런 일들이 지겨워서 밴드를 조직하고, 그를 핑계 삼아 또 한잔 하고 노래를 부른다. 배경은 연립 주택과 약간 낡은 아파트가 모여 있는 이면 도로나 골목 초입의 술집이나 음식점, 혹은 거리이다. 그의 작업실이 있는 장소와 비슷해 보인다. 이게 그의 강점이다. 이 상권은 오버하지 않는다. 자신이 뭘 하고, 뭘 알고 있는 지에서 시작한다. 지극히 구체적이다. 그리는 방법도 마찬가지이다. 남들이 뭘 하건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그의 그림들은 나직한 목소리로 주장한다. 아니 주장 한다기보다 이야기를 걸어온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묘한 설득력이 있어 그림 자체와 인물들의 직업, 배경과 그들이 무슨 말을 나누고 있을까를 상상하게 한다. 즉 일종의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그의 그림들이 가지는 일러스트적 효과와 서사적 성격 때문일 것이다.
즉 그가 그린 장면들은 현실의 장면을 사진 찍듯 옮긴 것도 완전히 상상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다. 그의 그림들은 현실과 그것에 바탕을 둔 허구가 적절히 배합되어 있다. 배합된 내용들은 일종의 데자 뷰 효과를 낳는다. 언젠가 저런 자리에 내가 있었던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몇몇 친구들은 약속 장소에 늦게 오고, 시시한 이야기를 하고, 잠시 이야기가 끊기고, 누군가는 혼자 행복했던 시절을 생각한다. 이 시시함, 그리고 구체성이 굳이 그림들을 시간에 따라 서사적 배열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러한 연상을 하게 만든다.
▲ 이상권, 귀갓길, 116.5x45cm, Mixed Media on Canvas, 2011 오래전 이상권의 전시 서문에서 나는 레지스 드브레를 빌어 회화란 <노동과 광선>이라고 썼었다. 그것은 아직도 유효해 보인다. 노동이란 회화가 떨구어 낼 수 없는 육체성을 의미한다. 아니 신체성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몸으로 느낀 것과 몸으로 다루어야 만들어지는 이미지라는 의미이다. 그 신체성은 감각과 몸이 가진 작가의 의도에 저항하는 물감들의 버팅김까지도 포함한다. 그리고 광선은 그림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이다. 물적, 외적 조건을 대표하는 광선이라는 말은 문화적, 역사적 무게를 털어버린 회화의 존재적 기반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뭐라 말하지 못한다. 회화란 그런 것일 것이다. 아무리 의미 구조화의 그물망 속에 놓여 있더라도 원초적인 뭔가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끌어당긴다. 이상권이 그림에 끌린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는 다시 그 밀고 당김의 세계로 들어섰다. 그가 이제 술집 골목을 나와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그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 작가약력
1965년 춘천 출생
1991년 홍대 회화과 졸업
개인전
2012년 2회 개인전 ( 갤러리 이즈)
1995년 1회 개인전 (21세기화랑)
단체전 및 그룹전
2011년 리얼리즘전(헤이리 마음의 등불)
2011년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전(서울 시립 미술관)
2011년 광화문 네거리에서 길을 잃다 (에뮤)
2000년 일상 삶 미술(대전 시립 미술관)
2000년 두벌 갈이 그룹전 4회
2000년 선 화랑 기획전
2000년 공산 미술제(동아갤러리)
2000년 국립 현대 미술관(이동미술관)
2000년 해방 50주년 기념 역사 미술전(예술의 전당)
1995년 아트스페이스 서울: 스푸마토의 경계 위에서 전
1995년 미술 습관 반성전 금호 미술관 6주년 기념전
1991년 위험 수위전 (바탕골 미술관)
현재
1998년 이후 지금까지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