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만 박사(독일 고히 미술관 관장)
세상을 구하는 예술
예술가들의 여행에는 그들만의 오래된 전통적인 유형이 있다. 대대로의 많은 예술가들은 조국을 떠나 먼 곳에서 이국적이고 색다른 느낌을 바탕으로 작품의 영감을 받아왔다. 들라크로와(1798-1863) 또는 마티스(1869-1954)가 매혹적인 색깔을 지닌 동양 모로코에서 접하면서 일어났던 일이든, 괴테(1749-1832)의 ‘이태리 기행’이나, 1970년대 독일의 화가 루돌푸 숍스(1932-)가 뉴욕의 인상적인 고층 건물들의 골짜기까지 처음 모험을 하였든 - 이처럼 새롭고 이국적인 느낌들은 예술가들을 늘 변화시켜왔고 그들 또한 그것에서 창의적인 영향을 받았다.
화가 티츠도 마찬가지로, 그의 세계를 표현한 그림들과 도시풍경들, 그리고 무궁무진한 영감의 원천 또한 다 그의 여행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난 수 년 동안 티츠는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인도, 미국, 그리고 아프리카의 대도시들의 매력에 빠졌다. 그가 아주 멀리서 가져온 각 나라 도시들의 인상들은 티츠가 그려내는 도시풍경에서 커다란 느낌과 인상 또한 찾게 해주었다. 그의 그림 속에 특유의 지형적인 특색은 여전히 반복적으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된 화제는 사람 그리고 그들의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티츠의 그림의 활력의 모든 근원은 사람과의 대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도시와 풍경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일들 즉 거대한 담론들이 오가며 발생했다. 우리는 다양한 색깔들이 엉켜있는 건물들과, 자동차들, 그리고 모든 낯선 것들과 있는 그대로의 것들과 사람들 - 모든 동류의 사람들, 그러나 필수적인 것만 입고 있는. 그들은 호리호리한 형태의 인물들은 대화하고자 하는 상대에게 명확한 몸짓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바의 신호를 보낸다. 그들을 보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 속으로 빠진다, 또한 티츠도 이것과 연관된 느낌을 그림을 통해서 이야기 한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 누구와, 누구를 위하여, 그리고 왜 그러한지.
그가 전해주는 것이 꿈의 세상일까? 마치 마르크 샤갈(1887-1985)의 하늘을 나는 말들과 사람들이 생각난다. 티츠도 샤갈처럼 엄청난 이야기꾼이다. 그는 사람들의 특징을 잘 묘사하고 그들이 무엇을 느끼는지를 그림을 통해 표현할 수 있다. 그의 그림을 통해서 우리는 화가가 얼마나 애정을 갖고 아주 상세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다. 그의 기법들이 간혹 캐리커처와 유사하지만, 그는 최소한의 수단으로도 그가 보고 느낀 개성들을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드로잉은 그의 작품에서 형식적 비결이다.
티츠는 대도시의 경관을 활력이 넘치는 붓놀림과 마치 미국의 액션 페인팅을 방불케 하면서 젊은 화가들 사이에 큰 영향력을 불러일으켰던 덴마크의 화가 K. R. H. 숀더버그(1923-2008, 도판참조) 의 제자로 슈트트가르트 아카데미에서 수학한다. 그의 영향으로 티츠 그림의 형태와 색채에 있어서 중요한 기법이 된다. 그의 최근의 그림들까지 포함해, 그의 재빠른 획 솜씨는 티츠의 작품세계에서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티츠의 그림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사람들 그리고 소통이었다. 가끔씩 그의 그림은 다른 때보다 우리의 현실을 너무나도 잘 비춰준다.
그가 그리는 도시들의 사람들은 다양한 문화권을 지닌 사람들이다. 문화적으로 하나가 되고, 고층건물들의 창 밖으로 몹시 놀라운 광경들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이 항상 대화할 상대를 찾는 것은 아니다. 가만히 우리를 슬프게 바라보는 혼자인 사람도 있다. 그가 그리는 도시의 풍경들은 아주 빼곡한 직물처럼 엉킨 선들과 색감으로 이루어져있다. 빼곡한 선들과 색감들이 인생의 속도를 나타내며, 교류가 보여주는 것은 무의식 중에 종종 보이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다.
최근 몇 년간 우리의 삶의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졌다. 우리의 정보의 속도는 잠깐 동안의 신중함과 침착함도 없이 나아간다. 요즘은 10억 분의 1초가 미국의 다우죤스나 독일의 DAX의 주가를 결정한다. 개인정보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되고 분류된다. 인간은 더 이상 대화상대가 되거나 대화할 필요가 없어진다. 컴퓨터에 입력된 거대한 정보들은 오직 컴퓨터가 지원하는 네트워크 망에 의해서 우리가 의심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현실을 판단하고 결정한다.
이 세상에는 문화가 만나고 인구 100만 이상의 거대도시들이 증가하며, 전 세계가 자체적으로 시스템이 지속화되고 있다. 이런 현시점이 몇 년 동안 티츠가 현재까지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두운 모습은 표현해내지 않았다. 그의 그림들은 복합적이며, 상반된 감정의 모든 현실을 보여준다. 그들은 거울을 통해 속도와 복잡함, 평화공존, 슬픔, 그리고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까지 - 뿐만 아니라 문화가 제공하는 다양성과 새로운 기회와도 밀착되어있다. 1994년작 '차볼라 시티'는 다 낡은 오두막들이었으나 대저택들처럼 커져갔다. 이것은 우리 도시 교외의 빈민굴보다는 퀼른 대성당과 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티츠는 잊혀진 빈민가에 존엄성과 자존감을 주었지만 신기하게도 그곳은 사람이 없고 적막이 흘렀다.
우리의 현실은 복잡하고도 양면적이다. 겉모습은 항상 현혹적이다. 작가들은 현혹적인 외관을 드러내 표현한다. 2010년 베를린 작품 '푸쉬킨알레'는 비교적 평온하며 차분하다. 보이는 구석 곳곳에 가을의 기분이 퍼져있다. 우리는 가지를 뻗는 나무 사이에 박혀있는 작가의 메시지를 찾았다. 지극히 평범한 구절, 도시 공간 속 사람들의 울림소리, '지혜', '작가의 휴대폰', '세계적인', '자유' 또는 '6000킬로미터의 번영'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작품의 설명을 찾아보려 노력하지만, 결국 혼자 외로이 남게 된다. 티츠는 자신의 수수께끼 같은 작품을 분석하지 않는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굉장히 복잡하며, 또한 1차원적으로만 설명하기엔 굉장히 복합적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구하는 예술” 이 구절은 같은 작품에서 비롯된 희망사항이고, 환상이며, 아주 멋진 발상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만의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물론, 거기엔 가방들도 있다. 티츠의 “고유판매제안”이기도 하다. 가방은 그의 작품에 있어 상징적인 의미이다. 그리고 가방에 그리는 그림은 아주 자연스럽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가방은 그림에 있어 표면적이다. 또한 꼴라주이며 그림에 있어 아주 중요한 구성요소이며, 다시 한 번 얘기하자면 외국문화를 전조하는 것이다. 화가는 가방과 함께 세계를 여행한다. 그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어디에서든 그것을 찾았다. 그의 메시지들이 비추는 것은 우리 세계의 다채로움과 다양함.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가방은 세계의 소비수단을 나타내며, 그리고 그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리는 비밀을 감추고 다른 사람들이 봤으면 하는 흥미로운 것들만 보여준다. 이 세상을 보는 관점은 티츠에 의해서 보여지며, 그는 아주 은밀하고 개인적인 존재며, 이제 “세상을 구하는 예술”을 통해 그의 시야가 전달될 것이다. 우리는 몹시 사랑스러운 티츠의 세계를 믿게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4월 12일부터 5월 2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청담아트센터(www.chungdamart.com)에서 열린다.
문의 :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100 루미안빌딩 B2 / 02-540-3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