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전쟁사에서 그 어떤 이유보다도 지휘관을 잘못 기용함으로써 큰 패배를 당한 전투를 꼽는다면, 첫손가락에 꼽히는 것이 중국의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와 조나라의 장평전투다. 진나라는 장평에서 자주 조나라 군대를 깨뜨렸지만, 조나라 군대를 지휘하는 염파장군은 보루의 벽만 튼튼히 할 뿐 나가 싸우지 않았다. 이에 진나라는 첩자를 이용해 조나라 국내에 "진나라가 두려워 하는 것은 오직 마복군 조사의 아들 조괄이 장군이 되는 것일 뿐이다." 라는 말을 퍼뜨린다.
조괄의 아버지 조사는 조나라의 명장이었는데, 살아 있을 때 일찍이 아들 조괄이 전쟁을 너무 쉽게 말하고, 병법의 이론만 알기 때문에 조괄이 조나라 군대를 지휘하면 조나라 군대는 큰 패배를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조괄의 어머니는 조나라왕에게 조괄을 기용하지 말라고 글을 올렸지만, 조나라왕은 고집을 꺾지 않고, 염파대신 조괄을 지휘관으로 임명하고, 결국 조나라 군사는 진나라 군사에 의해 포위 당해 굶어 죽어 가다가 40만명이 넘는 군사가 진나라에 항복한 후 생매장 당하고 만다. 이로인해 조나라는 급격히 국력이 기울고, 진나라에 의해 멸망당한다.
조나라에서 장평전투의 가장 큰 책임은 누구일까? 지휘관이었던 조괄일까? 아니다. 조괄은 자신의 능력대로 군사를 지휘했을 뿐이다. 능력이 부족한 조괄을 지휘관으로 임명한 조나라왕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
훌륭한 재상인 인상여와 조괄의 어머니 등이 반대했음에도 조나라왕은 자신의 고집대로 검증되지 않은 조괄을 지휘관으로 임명함으로써 큰 패배의 원인을 제공했다. 아랫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리더가 자신의 뜻대로 고집을 부리면 그 끝이 어떻게 되는지 장평전투는 너무나 잘 보여준다.
슬프게도 우리나라 전쟁사에서도 장평전투와 비슷한 예가 있는데, 임진왜란에서 칠천량해전의 패배다. 백전백승하고 있던 조선수군의 지휘관 이순신장군에게 선조는 무리한 출동 명령을 내리다가 이순신장군이 따르지 않으니 그 자리에 원균을 임명한다. 원균 또한 출동명령에 버티다가 권율장군에게 곤장을 맞는 수치를 당한 후 억지로 출동했다가 칠천량에서 왜군에게 포위당한 후 조선수군은 미리 도망간 경상우수사 배설의 함선 12척만 제외하고 모두 궤멸당한다. 전쟁터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왕의 무리한 요구와 능력이 부족한 인재를 임명하는 왕의 인사정책 때문에 결국 큰 패배를 불러 왔다는 것이 장평전투와 칠천량해전의 공통점이다.
한 조직에서 리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어떤 견고한 시스템을 갖춘 조직이라고 해도 결국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은 리더다. 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할수록 리더의 역할은 조직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 지난 4년동안 우리나라는 힘든 시기를 지나왔다. 앞으로의 5년은 우리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김정일이 죽은 북한이라는 변수와 함께 전세계적인 금융문제와 식량문제, 에너지 문제 등이 큰 파고로 우리나라를 덮쳐 올 것이다. 올 한 해 두 번의 선거에서 어떤 리더를 선택하는지가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부디 희망을 갖을 수 있는 결과가 만들어 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