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로봇이 화성을 돌아다니고, 갈비뼈 하나로 어느 시대에 살던 공룡인지 알 수 있는 과학의 시대에 우린 아직도 얼마나 많은 미신을 믿고 있는 걸까. 궁합을 봤는데 좋지 않다고 시어머니 될 사람이 결혼을 반대하고, 황금돼지띠에 태어나면 운세가 좋다고 신생아가 늘고,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을 지으러 작명원에 가고, 돼지꿈을 꾸면 복권을 사러 간다. 이사할 때도 좋은 날에 하려니 사람이 몰려 이사비용이 비싸다.
서양인들은 이름을 아빠나 엄마가 지어주어도 잘 살기만 하고, 이사도 아무 날이나 편한 날 한다. 궁합이 나쁘다고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도 없다. 그래도 서양인들은 동양을 지배했고, 자신들이 만들어 온 옷과 음악, 음식, 스포츠로 동양인을 사로 잡았다. 서양인은 외계인인가? 그래서 서양인에겐 통하지 않는 미신이 동양인에게만 통하는 건가?
신라에서 비담과 염종 등이 반란을 일으켜 김유신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 김유신군이 주둔하고 있던 월성에 큰 별이 떨어졌다. 비담군은 별이 떨어진 자리엔 반드시 피 흘릴 일이 있다고 여겨 이것은 김유신군이 패할 징조라며 사기가 매우 올랐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매우 두려워 하니까 김유신은 덕은 언제나 요괴한 것을 이긴다며 "길흉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에게 달린 것입니다." 라는 말로 왕을 안심 시킨다. 그 후 김유신은 불 붙인 허수아비를 연에 달아 하늘로 올린 후, 떨어졌던 별이 도로 하늘 위로 올랐다는 소문을 퍼뜨려 김유신군의 사기를 끌어 올리고, 비담군을 무찌른다. 김유신이 별이 떨어진 자리엔 피 흘릴 일이 생긴다는 미신을 믿는 장수라서 두려움에 월성을 버리고 후퇴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가뜩이나 두려움에 떨고 있던 군사들이 더욱 동요했을 것이다. 김유신은 미신에 겁을 먹기는 커녕 오히려 미신을 전략적으로 이용해 아군의 떨어진 사기를 끌어 올릴 줄 알았던 현명한 장수였다.
어릴 적 고향에선 상갓집에 다녀 온 사람이 집에 들어 오기 전에 액운을 쫓는다며 소금을 뿌리곤 했다. 필자는 그런 행동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인을 떠나 보내는 자리에 갔던 아름다운 사람인데 왜 나쁜 일이 일어 나겠는가? 만약 귀신이 있다면 오히려 좋은 일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바쁜 일 제쳐두고 자신을 보내는 자리에 온 사람인데, 고마움을 표하는 게 당연한 거지 왜 나쁜 일을 일으키겠는가? 혹 나쁜 일이 일어 났다 해도 그건 그저 날짜가 우연히 겹친 것 뿐이다. 상갓집에 가지 않았어도 그 일은 일어났거나 더 나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집안에 결혼날짜를 잡은 사람이 있으면 상갓집에도 못간다.
서양인들도 그럴까? 아들이 결혼 날짜를 잡았다고 친구를 보내는 길에 가보지 않는 게 사람의 도리일까?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 중에 자신의 복을 하늘에 빌고 땅에 빌고 바다에 비는 존재는 오직 사람 밖에 없다. 호랑이가 사슴이 잘 잡히게 해달라고 산신령에게 제사를 지내나? 대추나무가 벼락 맞지 않게 해달라고 구름에 비나? 황제펭귄은 영하 50도의 혹한에서도 얼어죽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 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견뎌낼 뿐이다. 오직 사람만이 스스로 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시간에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라며 의지하고 빈다. 자신의 노력과 지혜는 부족한데, 꿈은 크니 혹시나 해서 점집에 가 부적을 산다. 손을 뻗어서 얻을 수 있는 장미꽃을 구하려고 부적을 사지는 않는다. 간절히 기도 하지도 않는다.
어느 날 나무그루터기에 토끼 한 마리가 우연히 부딪혀 죽어 쉽게 토끼를 잡은 사내가 매일 나무그루터기 앞에서 간절히 기도한다고 토끼가 와서 또 죽겠는가? 나무그루터기에 부적을 붙여 놓는다고 지나가던 토끼가 와서 헤딩을 하겠는가? 올무도 만들고 함정도 만들고 덫도 설치하는 등 토끼를 잡는 노력을 했을 때 토끼를 다시 잡을 수 있는 거다. 우연은 그저 우연일 뿐이다. 그 우연을 슬기롭게 받아들여서 창조적으로 발전시키는 자는 행복한 삶을 살 것이요, 그 우연에 집착하고 의지해 노력을 게을리 하는 자는 남을 탓하는 삶을 살 것이다. 친구에게 기타를 선물 받았는데 방구석에 그냥 두면 귀찮은 짐일 뿐이요, 기타를 배우면 아름다운 음악 같은 삶의 시작이다.
언제 어디서든지 우연은 우리에게 찾아든다. 그 우연을 복으로 만드느냐 화로 만드느냐는 오직 우리의 노력과 지혜에 달렸을 뿐이다. 돼지꿈에 달린 것도 아니요, 간절한 기도에 달린 것도 아니요, 백만 원 짜리 부적에 달린 것도 아니다. 그리고 닭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매처럼 하늘을 날 수는 없다. 우리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이룰 수 있는 꿈도 있고, 이룰 수 없는 꿈도 있다. 꿈을 이루면 감사한 일이요, 꿈을 이루지 못하면 내 능력을 안 것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