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속에서 즐기는 야외전시 - 서희화의 Fun-Love 프로젝트

기사입력 2012.01.02 12:42 조회수 1,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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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밥을 먹으면서 밥그릇을 눈여겨보았는가? 늘상 사용해온 수저를 곰곰이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작가 서희화의 작품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질문이다. ‘거리는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온갖 조각품(폐품)으로 가득 차있다’는 R. 라우센버그의 말을 상기시키기도 하지만, 서희화의 프로젝트는 우리 전통문화와 서구문물의 정크(Junk), 한국적 익살과 해학, 기발한 착상을 절묘하게 섞어 현대 한국사회의 단면을 담아낸 초상이다. 미시사적으로 보면 이는 작가 개인사를 통해 우리네 여성의 삶을 기리는 추모와 축제로 구체화된다.

작가는 대학 재학시절이던 1997년경부터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레스 스틸 소재의 서구식 폐자재를 활용하여 전통 민화의 도상을 독자적인 스타일로 재치있게 풀어내는 역발상적 작업을 지속해왔다. 민화에 깃든 기복, 장생, 부귀, 공명 같은 민중의 꿈을 페트병, 필름통, 약통, 텔레토비, 안전모, 컴퓨터선, 휴대폰케이스 등 폐기된 레디메이드(ready-made) 오브제를 활용하여 화려한 색조로 유쾌하게 재창조한 <욕망>과 <행복>시리즈는 작가에 의하면 “두 문화 간의 소격화 현상”과 문화정체성의 쟁점을 가시화한다. 이러한 작업은 미술사적 맥락에서 볼 때 1990년대부터 동북아에 확산된 아시아 팝 혹은 네오 팝 열기 및 그 이전부터 시도된 한국미술계의 전통문화 재창출 작업과 맞물리는 선상에서 평가될 수 있다.

제 구실’을 다해 버려진 생수통과 마네킹다리와 옷걸이가 어우러져 민화 속 한그루의 소나무가 되고, 칫솔과 빨래집게와 플라스틱 스푼과 세탁기 호스가 한 마리 학을 이루고, 캡슐과 단추와 스푼이 호작도의 호랑이를 그리는 작가의 방법, 즉 일상적 오브제를 사용하여 사물성의 본래 용도와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방법론은 이번 작업에서도 차용된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다섯 작품을 통해 서희화는 여성작가로서 구체적이고 자화상적인 개인이야기를 펼쳐 내는데 미시사적 시각에서 이는 결국 과거와 현재, 전통문화와 서구문화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느 한국 여성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작가는 관객인 우리를 고향으로 인도하되, 민화의 경계를 넘어서 한국인 누구나의 여성, 보편적 엄마의 품으로 데려다준다.

Love-酒(주)는 한국인이 즐기는 대표적인 fun인 술문화를 주제로 작가가 2010년에 제작한 부조작품을 대형설치작업으로 변환한 것이다. 소주병, 맥주병, 전통주병, 양주병, 네 개의 술병이미지가 중첩되고, 민중이 즐기는 전통주병에는 부귀영화를 뜻하는 모란꽃과 장생을 상징하는 바위와 나비들이 스텐인레스 스푼과 나이프, 밥과 국그릇, 볼트와 너트 등 생활폐자재로 장식되었다. 술병들을 받쳐주는 핑크빛 지지대는 여인네의 형상으로, 이는 여성이 한국사회와 가정을 지키는 뿌리역할을 수행함을 대변하는 동시에 독신인 작가가 여성으로서 행복하고 평범한 삶에 대해 갖는 소망과 갈등을 넌지시 내비치기도 한다.

유사한 맥락에서 Love-족두리, Love-비녀, Love-잉어, Love-Mama 역시 각 주제를 밥·국·냉면그릇, 대접, 양푼, 주전자 등 살림살이 재료를 활용하여 거대한 사이즈로 확대시켜서 사랑과 결혼, 가정과 행복, 부귀영화와 장생 같은 여성의 소망을 표현한다. 사물의 축소와 확대, 물성의 변환 등 전환과 반복을 통한 팝 아트의 전형은 서희화의 작업에서 위트와 기지로 재해석된다. 가령 족두리 위에 대롱거리는 나비 장식은 민화에서처럼 장생을 상징하지만, 족두리의 옆면 장식은 현대판 부귀영화를 뜻하는 고층아파트와 자동차로 대체되며 족두리와 꽃가마의 이미지가 중첩된다. 자동차 형상을 관통하는 비녀 위에는 주전자·대접·밥그릇으로 구성된 앙증맞은 거북이가 역시 장생을 상징하는 동시에 가정의 뿌리로서 행복을 위해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우리 여성을 대변한다. 엎어진 그릇들 위의 웃는 가족얼굴은 행복을 꿈꾸는 여성-모든 엄마이자 아내의 소망이다. 이는 에서도 마찬가지로 뿌리 형상으로 한쪽 끝이 뻗은 산호비녀 장식이라든가 그 위의 고층아파트 창문이미지, 웃는 얼굴들, 거북이 형상에서 되풀이되고, 에서 부부의 금실을 상징하는 잉어 두 마리를 음양패턴의 한국적 하트(heart) 형상으로 변형시킨 예에서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전형적인 ‘뽀글이 파마’를 한 엄마의 크나 큰 품에서 쉬어가도록 반겨주는 에서 엄마의 포근한 미소, 모란꽃 장식의 치마폭, 무지개와 하트 형상에서 정점에 이른다.

서희화의 이번 프로젝트에서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화정체성 뿐 아니라 여성정체성의 이슈들은 얼핏 유쾌하고 익살맞게 제시된다. 하지만 그 저변에는 이 작업에 쓰인 잡동사니 폐기물들 마냥 엉켜져있는 우리 여인네들의 보편적인 꿈과 욕망, 넉넉한 희생과 인내, 깊은 한과 사랑이 깔려있어 한편 애처롭기도 하다. 이는 민화가 이룰 수 없는 욕망의 표현이듯, 어쩌면 가 성취하기 힘든 꿈에 대한 기원이자 수년 전 작고하신 엄마에 대한 작가의 추모, 그리고 우리 각자의 생과 기억 속 소중한 것들을 기리는 추모이자 축제 잔치의 한마당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족두리, 비녀, 잉어, 엄마 같은 주제의 화사하고 부드러운 ‘여성성’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강인한 물성의 스테인레스 스틸과 철을 사용하는 힘든 노역을 통해서 지난한 과거사와 현대사에서 우리네 여성들에게 부여되는 두 속성, 곧 유연성과 강인성의 공존을 말없이 웅변한다. 우리가 당연시하고 무심히 폐기하는 산업 오브제들의 피상적 무가치성을 전환시켜 새로운 존재성을 부여하고 한국적 生을 선사하는 서희화의 작업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엄마들이 치러야하는 산고가 아닐까 한다.

[조은영 원광대학교 교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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