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드라마 세상이다. TV 어디를 돌리든 드라마가 나오고, 극장엔 새로운 영화가 쏟아진다. 드라마(drama)라는 낱말은 희곡이라는 뜻과 함께 '극적 사건' 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TV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언제나 우리의 주인공은 쉽게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다. 온갖 어려움과 고통을 견디고 헤쳐 나간 후에나 사랑하는 이를 구하고, 영웅이 된다. 브루스 윌리스의 '다이하드'시리즈나 원빈의 '아저씨'가 대표적이다.
우리 인생살이 또한 쉽지 않기에 주인공의 고군분투에 우린 함께 울고 웃는다. 그런데 만약 주인공이 너무나 쉽게 악당을 쳐부수고 사랑하는 이를 구한다면 그 드라마나 영화가 흥행할 수 있을까?
2002한일월드컵 때, 이탈리아와의 16강 전이 왜 지금도 많이 이야기 되고 있을까. 이탈리아는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였다. 영화로 말하면 마지막에나 등장하는 가장 강력한 악당이었다. 델 피에로, 말디니, 부폰, 가투소, 토티 등 그 당시 세계 최고의 선수가 포진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이탈리아를 이길 거라고 예상한 축구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거기에 안정환 선수의 페널티킥 실패 후 이탈리아 비에리 선수의 헤딩 선제골이 들어가면서 계속 이탈리아에 끌려 가다가 '이렇게 16강에서 탈락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 무렵인 후반전 42분에 터진 설기현 선수의 극적인 동점골, 그리고 연장전에서 페널티킥 실축 후 뛰는 내내 힘들었을 안정환 선수의 너무나 드라마틱한 골든골...그 누가 이렇게 매력적인 스토리를 쓸 수 있을까.
그런데 만약 삶과 목숨을 걸고 우리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그런 이야기를 진행해야 한다면 그래도 우리는 강력한 악당과 온갖 어려움을 만나야 하는 길을 가야 하는 걸까? 골리앗과 싸움을 한다면, 총 대신 돌을 달라고 해야 하나? 총으로 골리앗을 쓰러뜨리면 시시하니까?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은 월드컵 조편성에서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과 한 조에 편성되기를 바래야 하나? 약한 팀과 싸우는 건 재미없으니까? 드라마나 영화에선 대부분 주인공이 마지막에 웃지만, 현실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2002월드컵 16강 전에서 드라마틱하게 이탈리아를 이긴 댓가는 너무나 혹독했다. 연장전까지 간 피말리는 승부 탓에 선수들의 체력은 바닥 났고, 부상당한 선수들도 있었기에 8강전이었던 스페인전에선 한 골도 못넣고 어려운 경기를 하다가 승부차기까지 가서야 겨우 이겼다. 16강전과 8강전 두 번 연속 강팀과의 연장전 승부로 4강전이었던 독일전에선 체력의 열세와 부상선수의 공백이 생겨 홈이점과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패하고 말았다. 16강전과 8강전을 연장전까지 가지 않고 쉽게 이겼다면 독일은 충분히 이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되었다면 꿈의 무대인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과 당당히 겨루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 같은 멋진 승리 때문에 선수들은 완전히 지쳤고, 그 후유증으로 더 높은 곳은 가지 못했다. 그것이 바로 현실이다.
"옛날에 전쟁을 잘 한다고 일컫는 자는 승리하되 쉽게 승리하는 자이다."라는 말은 손자병법 '형'편에 나오는 말이다. 손자는 천하 사람들이 '잘 싸웠다'고 말하는 승리는 잘 한 승리가 아니라고 말한다. 지혜롭다는 명성도 없고, 용맹한 공적이라는 말도 따라 붙지 않지만, 싸워서 승리하는 데엔 어긋남이 없게 하는 것이 바로 전쟁을 잘 하는 자가 승리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손자는 손자병법 '모공'편에서 전쟁을 하지 않고 적의 군대를 굴복시키고, 공격을 하지 않고 적의 성을 함락시키며, 질질 끌지 않고 적의 나라를 무너뜨리고, 적을 온전하게 하여 천하를 다투는 것이야말로 용병을 잘 하는 자라고 말한다.
병법이 생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병사들에게 개미떼처럼 성벽에 올라가서 싸우라고 하다가 병사들의 삼분의 일을 죽게 만들기 전에 '어떻게 하면 병사들의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적을 이길 수 있을까?' 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혁신적인 전략가와 장수가 병법을 만든 것이다. 병사를 아낄 줄 모르고,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전쟁을 치뤘던 장수가 어찌 혁신적인 전략을 생각해 낼 수 있겠는가. '하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무조건 밀어 부치면 일하는 사람만 힘들지 결과가 좋을 수 없다. 나무꾼이 돌도끼로 나무를 베려고 하면 하루종일 열심히 일한들 나무 한 그루 제대로 베기도 쉽지 않다. '어떻게 하면 더 쉽게 나무를 벨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해봐야 돌도끼보다 훨씬 더 성능이 좋은 강철도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더 쉽게 하려는 생각과 의지가 바로 혁신의 원천이다. 더 쉽게 무거운 짊을 옮기려는 고민이 바퀴를 만들어 냈고, 더 쉽게 산과 바다를 건너려는 고민이 비행기를 만들어 냈고, 더 쉽게 백성이 글자를 읽을 수 있게 해주려는 고민이 한글을 만들어 냈다. 혁신은 결코 하면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혁신은 이루어진다. 큰 전쟁을 치룰 때마다
어김없이 인류의 문명이 발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죽지 않으면서 적을 더 쉽게 이길 수 있을까?' 라는 치열한 고민을 하다보니 레이더도 헬리콥터도 탱크도 미사일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내가 내 인생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멋진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어려운 길로만 간다면 결국 발전은 없고, 스트레스에 건강만 나빠지기 쉽다. 우리나라 40대 남성의 사망률이 계속해서 세계 1위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은 안하고, 휴일도 반납하고 최대한 많은 시간동안 쉬지도 않고 일만 하다보니 가장들이 쓰러져 가는 거다. 대기업 회장이라는 사람이 공휴일이 많으니 더 줄이자고 하는 나라에서 도대체 어떻게 혁신이라는 것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혁신은 더 쉽게 더 효율적으로 일한 후, 더 많이 삶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만이 해낼 수 있다. 더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는지 찾아보자. 그리고 쉽게 감으로써 여유가 생긴다면 음악도 더 많이 듣고, 여행도 더 많이 다니고, 사랑하는 이와 산책도 더 많이 하자. 삶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유는 마음껏 즐기라는 것이지, 결코 투쟁하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쉬운 길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