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5년 단임제의 대통령제 국가다. 5년에 한 번씩 국민의 투표로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다. 대통령이 나라를 잘 운영해도 5년 후엔 대통령자리에서 물어나야 한다. 같은 정당에서 대통령을 두 번 연속한다면 10년 정도는 정책의 연결성이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지만, 5년 후에 다른 정당에 의해 대통령이 바뀐다면 5년 만에 정책의 연결성이 흔들려 버린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십 년동안 많은 국가적인 노력으로 유지한 햇볕정책이 이명박정권이 들어서고 풍지박살이 나면서 정부의 정책을 믿고 대북정책을 추진한 기업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고 있는가. 그리고 추후 북한의 정세가 급격하게 변할 시 과연 대한민국은 북한에 어떤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까. 십 년 동안의 투자가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 하나로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4년에 한 번 선거를 하는 국회나 5년에 한 번 선거를 하는 대통령은 당선된 그 순간부터 다음 선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고로 십 년 이상을 내다 보고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필요한 정책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당장 다음 선거를 위해 국민에게 인기 있고, 국민 눈에 쉽게 들어오는 전시성 행사 위주로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시의 뉴타운 정책과 각 지방자치단체의 축제행사다. 집값이 오르기를 바라는 서울시민의 기대 때문에 결국 지금 서울시는 어떻게 되었는가? 각 지방자치단체의 보여주기 행정 때문에 매 년 별 소득도 없이 쓰이는 축제행사 비용은 또 얼마나 많은가. 4년이나 5년 마다 정권과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뀌는 이 정치시스템에서 과연 국가와 국민에게 두고두고 큰 혜택을 줄 수 있는 좋은 정책이 만들어지고, 추진될 수 있을까?
동양 역사엔 사회의 부조리와 훈구세력을 몰아내고 새로운 사회와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많은 개혁가가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혁가는 뜻을 이루지도 못하고 훈구세력에 의해 제거 당하고 개혁은 실패하곤 했다. 조선시대 중종 때 도학정치를 펼쳤던 조광조가 그랬고, 중국의 송나라 때 신법을 펼쳤던 왕안석 또한 그랬다. 많은 이권을 가지고 있는 훈구세력이 자신들의 이권을 빼앗게 될 개혁법안을 찬성할 리가 없다. 그러나 드물게도 성공한 개혁이 있으니 그 중에 하나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상앙이 추진한 사회 개혁법인 '변법'이다. 물론 상앙 또한 자신을 지지해 준 효공이 죽은 후, 반대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는 했지만 변법은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주었다.
상앙은 진나라 효공에게 임용된 후 옛 법을 바꾸어 새로운 법을 만들었지만, 백성이 새 법령을 믿지 않을까 염려하여 널리 알리기 전에 큰 나무를 도성 저잣거리의 남쪽 문에 세우고 백성을 불러 모아 "이 나무를 북쪽 문으로 옮겨 놓는 자에게는 십 금(金)을 주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백성이 아무도 옮기지 않자 다시 오십 금을 주겠다고 말하니 한 남자가 나무를 옮겨 놓았다. 상앙은 즉시 그에게 오십 금을 주어 나라에서 백성을 속이지 않음을 분명히 하고 나서야 새 법령을 널리 알렸다. 법령이 시행된지 일 년 만에 진나라 백성 가운데 도성까지 올라와 새 법령이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자가 천 명을 헤아릴 정도였지만, 태자가 법을 어겨서 태자 대신 태자의 스승인 공자 건의 목을 베니 그 다음 날부터 진나라 백성은 모두 새로운 법령을 지켰다. 그 후 십년이 되자 진나라는 부강해지기 시작해 상앙이 재상으로 있었던 20년 동안 진나라는 천하통일의 기반을 굳건히 다졌다. 상앙은 법령이 편하다고 말하는 자도 교화를 어지럽히는 자라며 전부 변방 지역으로 쫓아 버려서 백성들은 새로운 법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자가 없었다.
상앙은 개혁의 성공은 그 무엇보다도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중요하다고 믿은 정치가다. 아무리 좋은 법안도 국민들이 정부를 믿지 못해 따라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하물며 정부가 국민을 속이려고 노력하는 정권 아래서 어떤 좋은 정책이 실행되고, 또 국민이 그 정책을 따라 줄 수 있겠는가. 아이를 더 많이 낳으라고 아무리 홍보를 해도 내 아이를 언제든 국가가 책임져 줄 거라는 신뢰가 없다면 조금이라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젊은 부부는 아이 낳기가 어렵다. 그러나 예를 들어 성인이 될 때까지 아이 한 명당 월 100만원씩 지급해주겠다는 정책을 세우고, 계속해서 십년 이십년 변함없이 그 정책이 꾸준히 지속된다면 그래도 신생아수가 줄어들까? 적어도 돈이 없어서 아이를 못낳는 젊은 부부는 없을 것이다.
상앙의 '변법'이 성공한 이유 중 또 하나는, 상앙이 효공이라는 훌륭한 임금과 함께 20년이라는 세월을 재상으로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효공이 만약 상앙이 변법을 추진한지 몇 년만에 죽었거나, 효공이 상앙을 몇 년 만에 재상직에서 쫓아냈다면 과연 진나라가 변법을 그렇게 추진해서 강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을까?
우리 조선의 세종대왕이 그렇게 훌륭한 정치를 펼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도 30년이 넘게 임금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책을 실행하다가 부족한 면이 나타나면 보완해서 다시 실행하고, 능력있는 인재와 함께 훌륭한 정책을 만들고 실행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세종대왕이 그런 훌륭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세종대왕이라고 해도 5년만 임금을 했다면 한글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4년이나 5년에 한 번씩 선거로 인해 정부의 정책이 갈팡질팡 한다.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려는 정치 뿐이다. 온 국민이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중무장한 새로운 사회에 과연 지금의 정치시스템이 잘 어울리고 있는가? 어떻게 하면 좋은 정책이 많이 만들어져서꾸준하게 오랫동안 그 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정치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까. 정치시스템이 제대로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선진국 진입은 계속해서 먼 미래의 일일 것이다.
정치가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