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새롭게 쓰여진다. 동아시아의 영원한 베스트셀러 삼국지도 유비, 관우, 장비가 만나는 도원결의로 시작한다. 이성계는 정도전이라는 뛰어난 정치가를 만남으로써 조선의 초대 임금이 될 수 있었고, 수양대군은 한명회라는 모사꾼을 만남으로써 태종과 세종이 이룩한 문화강국 조선을 망쳐 버리는 역사를 쓰고 말았다. 한나라의 유방도 소하와 장량, 한신 등을 만남으로써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유비 또한 제갈공명이라는 최고의 재상을 만났기에 땅 한 평 없었던 백수에서 촉나라의 황제로 이름을 남겼다.
인간은 저마다 타고난 성격과 능력이 다르다. 다른 이들을 이끌어야 살맛이 나는 리더스타일이 있고, 리더를 돕고 보좌할 줄 아는 참모스타일이 있다. 물론 많은 이들이 한 조직의 리더이면서 또한 참모다. 팀장이 여러 명의 팀원을 책임지는 리더이지만, 부장이나 사장을 모셔야 하는 참모이기도 하는 것처럼. 리더가 능력있는 인재를 찾아서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참모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줄 수 있는 리더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항우의 참모였던 범증은 자신의 계책을 제대로 받아주지 않는 항우 때문에 결국 역사의 실패자로 남았고, 한신의 참모였던 괴통 또한 한신이 자신의 계책을 받아주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했다. 어떤 리더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능력을 120% 발휘할지, 아니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후회와 미련만을 남길지가 달렸다. 그래서 난세가 오면 야망을 품은 이들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최선의 리더를 선택하기 위해 노력한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소진이라는 사나이도 그랬다. 소진은 귀곡 선생에게 가르침을 배운 후 여러 해 동안 유세하러 다녔지만 많은 어려움만 겪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비웃음을 당했다. 그러나 일 년쯤 방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고는 유세할 상대방의 심리를 알아내어 설득하는 방법을 터득한 후 연나라, 조나라, 한나라, 위나라, 제나라, 초나라의 군주를 설득해 여섯나라가 합종해 진나라에 대항하도록 하고 마침내 자신은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했다. "저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큰 일을 하지 못하는 군주는 섬기지 않습니다."라는 말은 소진이 연나라왕을 만났을 때 했던 말이다. 자신의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군주를 선택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겠는가.
리더를 선택함에 있어서 최고의 결정을 한 참모를 꼽으라면 단연 제갈공명이 떠오른다. 역사엔 삼고초려로 리더의 입장에서 뛰어난 인물을 모시기 위한 유비의 노력으로 그려졌지만, 제나라의 뛰어난 재상인 관중과 연나라의 상장군으로 제나라의 칠십여 성을 함락시킨 악의와 자신을 비교했던 제갈공명으로선 세상에 이름을 떨치기 위해 함께 일 할 군주를 선택해야 했기에 누구 밑에서 일 할지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자신을 모시기 위해 노력했고, 참모진이 부족했던 유비를 선택함으로써 동아시아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에 한 명으로 남을 수 있었다. 제갈공명이 이미 참모진이 풍부하게 갖춰진 조조나 손권 밑으로 들어갔다면 과연 지금처럼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었을까? 지금으로 보면 중소기업 사장 수준도 안되는 백수 유비를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었기에 제갈공명은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었다.
제갈공명의 선택은 대기업을 선호하고, 중소기업을 멀리 하고 있는 현 세대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 해준다. 용의 꼬리가 될지언정 뱀의 머리는 되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지만, 용의 꼬리는 주로 시키는 일만 해야 한다.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조차 잡기 어렵고, 능력있는 많은 경쟁자들과의 싸움만으로도 버거워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여유도 없다. 그에 비해 뱀의 머리는 새로운 도전에 맡서 스스로 해결책을 만들어 내야 할 기회가 많고, 도전을 겪을 때마다 자신의 능력을 키워감으로써 그만큼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가능성 또한 높다. 시키는 일만 할 줄 아는 사람이 무언가 위대한 것을 새롭게 창조해 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던가? 지금의 대기업들도 처음엔 대부분 몇 명으로 시작한 소규모 기업이었다. 이미 시스템이 갖춰진 거대 조직에선 그저 하나의 부속품으로 주어진 임무만 해내기도 바쁘다. 능력이란, 새로운 도전을 겪고 그 도전을 이겨낼 때 더 발전할 수 있는 법이다.
처음부터 리더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다. 우린 대부분 누군가의 밑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부하를 아껴줄 줄 알고, 부하의 능력을 키워줄 줄 알고, 부하와 함께 진심으로 앞으로 나갈 줄 아는 리더를 만나면 일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즐겁게 보람을 갖고 일할 수 있지만,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자신에게 아부하는 부하만 가까이 하고, 자신의 능력을 넘어설까봐 부하를 키우지 않는 리더를 만나면 그저 스트레스만 많이 받을뿐 훌륭한 성과도 못내고 발전할 기회조차 잡을 수 없다. 고로 한 조직에 몸 담게 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를 직접 움직이는 리더가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리더인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훌륭한 리더라는 판단이 서면 최선을 다해 일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최대한 빨리 조직을 뛰쳐 나오는 것이 상책이다. 괜히 스트레스 받아서 몸과 마음만 다치고,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참모에게 있어서 가장 큰 즐거움은 자신이 만들어낸 계책을 리더가 흔쾌히 받아들여서 실행시켜 주는 것이다. 사나이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고 했던가.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고, 계책을 물어봐주고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리더를 만나면 얼마나 일하는 게 행복한가. 세종대왕 밑에서 일했던 이들이 부러운 이유다. 이순신장군 밑에서 싸웠던 이들이 부러운 이유다. 그런 리더를 만나기 위해 우린 과연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훌륭한 리더가 되기 위한 노력만큼이나 훌륭한 리더를 만나기 위한 노력 또한 중요하다. 우린 한 조직의 리더이면서 또한 한 조직의 참모일 수 있기 때문이다.